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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


세종지리지


조선왕조실록


율곤
이중재


 


 


 


 


 


 


 


 

①③
 

①④
 

①⑤
 

①⑥
 

①⑦
 

①⑧
 

①⑨
 

②㉧
 

②①
 

②②
 

②③
 

②④
 


한민족의 영혼 역사


역사란


역사의문점


역사왜곡법


성도왕건묘


대규모황충


대규모지진


제주도
말馬


울릉도독도


경도한성


영산백두산


별자리삼국


유전자분석

①③
한恨아리랑

①④
한민족기원

①⑤
신神
○금禁

①⑥
동방○에덴

①⑦
한글○한문

①⑧
만~리장성

①⑨
단군
○조선

②㉧
후한○남원

②①
중국○동국

②②
안변○쌍송

②③
북경○함흥

②④
국경○적병

②⑤
아阿○아亞

②⑥
철령○조선

②⑦
서해○청해

②⑧
백이○숙제

②⑨
공자○동국

③㉧
압록○황하

③①
한韓○한漢

③②
고대○삼한

③③
삼국고지도

③④
나주계수관

③⑤
지명○지도

③⑥
한역사자료

③⑦
대륙조선개국


대명조선

                   


제주도

1.조선 유일의 마군을 보유한 제주도(세종실록지리지)

조선
군사

국도
한성

?

구도
개성

도성 순작패 군정 1,000명. 속현 개성 마군 68명. 보군 5명. 강군 좌·우령 20명.

8도

시위군
(정군)

선군
(강군)

진군

영군

영진군

수호군

수성군

마군

보군
(갑사)

방패군
(
봉화군)

동절방어(장번수군)

익군
(
익갑정)

잡색군


경기도

1,713

3,445

 

 

 

 

 

 

 

 

(528)

 

다 토정을뽑아 군사를 삼았으므로 같이 적지 아니한다.

나머지 고을도 이와같다


충청도

1,945

7,777

1,716

50

 

235

13

 

 

 

 

 


경상도

2,631

14,526

2,528

120

977

103

919

 

 

 

 

 


전라도

1,152

10,993

1,326

89

796

100

38

1,421

1,945

1

 

 


황해도

2,194

3,987

583

 

2,079

 

 

 

 

(7)

 

 


강원도

2,276

(1,384)

32

 

 

 

11

 

 

25

 

 


평안도

3,010

3,336

 

 

 

 

1,012

 

 

 

1,432

15,296


함길도

(3,046)

(1,059)

 

 

 

 

608

 

(214)

(6)

 

4,475
(262)

 

14,921
(3,046)

44,006
(2,443)

6,185

259

3,852

438

2,601

1,421

1,945
(214)

26
(13)

1,432
(528)

19,771
(262)

㉧④
전라도

시위군
(정군)

선군
(강군)

진군

영군

영진군

수호군

수성군

마군

보군
(갑사)

방패군
(
봉화군)

동절방어
(장번수군)

익군

잡색군


전주부

318

4,335

713

 

 

3

30

 

 

 

 

 

다 토정을뽑아 군사를 삼았으므로 같이 적지 아니한다.

나머지 고을도 이와같다


나주목

311

3,296

271

89

225

 

 

 

 

 

 

 


남원도호부

227

1,578

197

 

 

90

 

 

 

1

 

 


장흥도호부

296

1,784

145

 

571

7

8

 

 

 

 

 


제주목

 

 

 

 

 

 

 

1,421

1,945

 

 

 

 

1,152

10,993

1,326

89

796

100

38

1,421

1,945

1

 

 

2.조선왕조실록

①의주의순으로 고치고, 안주안흥으로 고치고 길주길안으로 고치고 강릉은 예전대로 하고 제주탐라로 고치어 5대도호부를 삼으소서. 위의 다섯 부는 모두 국경의 거진이니 마땅히 도호부로 칭하여 군민의 책임을 겸하여 맡게 하소서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윤11월 19일 임술 3번째기사 1403년 명 영락 1년)

①義州義順, 安州安興, 吉州吉安, 江陵仍舊, 濟州耽羅, 爲五大都護府。 右件五府, 皆封疆巨鎭, 當以都護府稱之, 兼掌軍民之任

②나주 목사 조환이 사조하니, 인견하고 말하기를, "나주는 지경이 제주와 연접하여 있기 때문에 도망치는 사람이 많으니 너는 가서 그들을 안무하라."하였다.(세종실록 50권, 세종 12년 12월 2일 무진 2번째기사)

②羅州牧使趙環辭, 引見曰: "羅州境連濟州, 人多逃移, 汝往撫綏。

③전라도 도관찰사 이맹진에게 교유하기를 "일찍이 들으니 제주 근처에 백도·흑도백산도·흑산 등의 섬이 있다는데, 이러한 섬이 제주 근처에 몇 개나 있는가(세종실록 104권, 세종 26년 4월 7일 병술 1번째기사 1444년 명 정통 9년)

③諭全羅道都觀察使李孟畛:曾聞濟州近地有白島•黑島•白山•黑山等島。 如此之島, 濟州近地有幾歟?

④상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여러 신하들이 이인김경재를 극형으로 처치하기를 청하매, 내가 제주로 귀양보내고자 했더니, 여러 사람이 이르기를, ‘제주는 비록 해중 섬이라고 하나 거리가 멀지 않아서 여기에 둠은 옳지 못하다.’ 하니 어떻게 처리할까. 그것을 의논하여 아뢰라."하니(세종실록 104권, 세종 26년 5월 21일 경오 4번째기사 1444년 명 정통 9년)

④上謂承政院曰: "啓事諸臣請置敬哉極刑, 予欲編配濟州, 僉謂: ‘濟州雖云海島, 程途不遠, 置之於此, 不可。’ 何以處之? 其令擬議以啓。

 

3.제주도 목장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서 정말로 이해가  제일 안 되었던 역사 교과서 기록 몽고 원나라가 제주도에 목장을 만들어 내구마를 가져갔다

대륙에 넘처 나는게 좋은 말인데 얼마나 제주도 말이 좋으면 한반도 바다건너 수만리를 와서 제주도에서 기른 말을 가져갔다. 

제주도 말은 체구가 작은 말이며, 제주도는 현무암 지대라 물이 해변에서 주로 솟으며, 말을 기르려면 대규모 수초가 있어야 하는데 목장이 주로 한라산 중턱에 위치하여 대규모 말 기르는데는 부적합 하며

말을 전쟁시 군사용으로 쓰려고 하는데 어떻게 대규모의 말들을 제주도에서 바다를 건너 수백~수천km 멀고먼 대륙으로 말을 이동 시키며

전혀 한반도 제주 지형과 맞지 제주 설명

4.해설

현 한반도 제주도는

①조선의 5대 국경 거진이 될 수 없으며

②나주와 연하여 접해 있지도 않으며

③제주도 근처에는 백도·흑도백산도·흑산도 등의 섬은 있지도 않으며

④경도 한성과 가깝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제주도만 조선 유일의 마군을 보유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5.결론

 

지명

역사적 사실기록

결론

교정세종실록지리지

제주도

대륙과 일치

교정세종실록지리지는
한반도를 설명 한 것이 아니라
대륙 지리를 설명 한 것입니다

한반도

제주도

불일치

 

 

 

 

⊙교정 세종 실록 지리지

223
지리지/전라도
◎제주목◎

지리지/전라도

◎제주목

도안무사【3품이면 안무사라고 칭한다】
판관【겸감목관】·교수 관·검률·의학 교유.

본주는 전라도의 남쪽 해중에 있다.

그 주의 고기에 이르기를,“태초에는 사람과 물건이 없었는데, 신선 세 사람이 땅으로부터 솟아나왔다. 지금도 주산 북쪽 기슭에 ‘모흥’이라 하는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곳이다.

맏을 ‘양을나’, 둘째를 ‘고을나’ 세째를 ‘부을나’라고 하였다. 세 사람은 황량한 땅에서 사냥을 하여서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그 고기로 식량을 하였다.

하루는 자주 색깔로 칠하여 봉한 목함이 두둥실 떠서 동쪽 해빈에 이르는 것을 보고 가서 열어보니, 목함속에 또 석함이 있었다.

붉은 띠에 자주색 옥을 입은 사자 한 사람이 있어서 석함을 열었는데,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과 망아지·송아지와 오곡의 종자가 나왔다.

이어 말하기를, ‘나는 바로 일본의 사자입니다. 우리 임금께서 이 세 따님을 낳으시고, 이르시기를, 「서쪽 해중 있는 산에 신선 세 사람이 내려와서 장차 나라를 세우려고 하나 배필이 없다.」 하시고, 이에 신에게 명하여, 세 따님을 모시고 오게 하였습니다.

당신들은 마땅히 짝을 이루어서 대업을 이루도록 하십시요.’ 하고는,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세 사람이 나이 차례대로 나눠서 혼인하고, 샘이 좋고 땅이 기름진 곳에 나아가서 화살을 쏘아 살 땅을 선택하였는데, 양을나가 사는 데를 ‘제일도’, 고을나가 사는 데를 ‘제이도’, 부을나가 사는 데를 ‘제삼도’라고 하였다. 비로소 오곡을 심고, 또 망아지와 송아지를 기르니 날로 부유하고 번창해갔다.

15대 손에 이르러, 고후·고청의 형제 세 사람이 배를 만들어 타고 해를 건너 탐진에 이르렀는데, 대개 신라가 번성할 때였다. 그때 객성이 남방에 나타나니, 태사가 아뢰기를, ‘다른 나라 사람이 내조할 징조입니다.’ 하였다.

세 사람이 드디어 신라에 입조하매, 왕이 가상히 여겨서, 장자을 ‘성주’라고 하니, 그 움직인 별을 상징한 것이요, 둘째를 ‘왕자’라고 하니, 왕이 고청으로 하여금 바지가랑이 밑으로 빠져 나가게 하고서 자기 아들같이 사랑하였으므로, 이렇게 이름지은 것이요, 막내를 ‘도내’라고 하고, 읍의 이름을 ‘탐라’라고 하니, 대개 신라 때에 처음으로 탐진에 이른 까닭이었다. 각기 보개와 옷과 띠를 주어서 돌려보냈다. 이로부터 자손이 번성하였고 본국을 정성껏 섬겼으며, 고를 성주로, 양을 왕자로, 부를 도상으로 고쳤고, 뒤에 또 양을 양으로 고쳤다.

地理志/全羅道/

◎濟州牧

都按撫使【三品則稱按撫使】判官【兼監牧官】。敎授官。檢律。醫學敎諭。

州在全羅南海中。

其州古記云。太初無人物。三神人從地湧出。今主山北麓有穴。曰毛興。 是其地也

長曰良乙那。次曰
高乙那。三曰夫乙那。三人遊獵荒僻。皮衣肉食 

一日見紫泥封藏木函。浮至于東海濱。就而開之。木函內又有石函。

有一紅帶紫衣使者。開石函。出現。靑衣處女三。及諸駒犢五穀種。 

乃曰。我是日本國使也。吾王生此三女。云。西海中嶽降。神子三人。將欲開國。然無配匹。於是。命臣侍三女以來。

爾宜作配。以成大業。使者忽乘雲而去。

三人以歲次分娶之婚姻。就泉甘土肥處。射矢卜地。良乙那所居曰第一都。高乙那所居曰第二都。夫乙那所居曰第三都。始播五穀。且牧駒犢。日就富庶。

至十五代孫高厚。高淸昆弟三人。造舟渡海。至于耽津。蓋新羅盛時也。 于時。客星現于南方。太史奏曰。異國人來朝之象也。 

遂朝新羅。王嘉之。稱長子曰星主。以其動星象也。二子曰王子。王令請出胯下。愛如己子。故名之。季子曰都內。邑號曰耽羅。蓋以新羅時初泊耽津故也。各賜寶蓋衣帶而還。自此子孫蕃盛。敬事國家。改以高爲星主。良爲王子。夫爲都上。後又改良爲梁。

《삼국유사》에 실린 해동 안홍기에 구한을 열거하였는데 탁라가 네 번째에 있다.

백제 문주왕 2년 병진에 탐라국 사자에게 은솔이란 벼슬을 주었고, 동성왕 20년 경신에 탐라에서 공부를 바치지 아니한다 하여 왕이 친정하여 무진주에까지 이르렀는데, 탐라에서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어 죄를 빌었으므로 이에 중지하였다.”하고, 주에 이르기를, “탐라는 곧 탐모라이라.”하였다.

백제가 망하니, 신라 문무왕 원년 임술에 탐라 국주 좌평 도동음률이 와서 항복하였다.【좌평은 백제의 벼슬 이름이다. 】

고려 숙종 10년 을유에 탁라를 고쳐서 탐라군으로 하였고, 의종 때 현령관으로 하였다. 충경왕 11년 경오에 역적 김동정이 삼별초를 거느리고 탐라에 들어가서 난을 일으켰는데, 4년이 지나 14년 계유에 시중 김방경에게 명하여 토벌하여 평정하게 하였다.

충렬왕 3년 정축에 원나라 조정에서 목마장으로 삼았는데, 21년 갑오에 왕이 원에 들어가서 탐라를 돌려주기를 청하니, 원 승상 완택 등이 상주하여, “그 탐라를 고려에 돌려주는 것이 옳겠다.”하는 성지를 받았고, 익년 을미에 탐라를 고쳐 제주로 하였고, 비로소 판비서성사 최서를 목사로 삼았으며, 26년 경자에 원나라 황태후가 또한 내구마를 방목하였는데, 31년 을사에 도로 본국에 환속하였다.

충숙왕 5년 무오에 초적 사용·엄복이 군사를 일으켜 난을 꾸미니, 본토 사람 문공제가 군사를 일으켜 이를 모두 잡아 죽이고 조정에 보고하였으므로, 다시 관리를 두었다.

공민왕 18년 기유에 원의 목자 합치가 발호하여 관리를 살해하였는데, 6년이 지나 23년 갑인 8월에 나라에서 도통사 최영을 보내어 합치를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다시 관리를 두었다.

본조 태종 2년 임오에 성주 고봉례와 왕자 문충세등이 성주와 왕자의 호가 너무 참람한 것 같다고 하여, 고치기를 청하였으므로, 성주를 좌도지관으로, 왕자를 우도 지관으로 하였다.

三國遺事。載。海東安弘記。列九韓。乇羅居四。

百濟文周王二年丙辰【劉宋後廢帝元徽四年】。拜耽羅國使者恩率。東城王二十年庚申【南齊太祖建元二年】。以耽羅不修貢賦。親征至武珍州。 耽羅聞之。遣使乞罪。乃止。註云。耽羅。卽耽牟羅。 

百濟滅。新羅文武王元年壬戌【唐高宗龍朔二年】。耽羅國主佐平徒冬音律來降【佐平。百濟官號】。

高麗肅宗十年乙酉【宋徽宗崇寧四年】。改乇羅爲耽羅郡。毅宗時。爲縣令官。忠敬王十一年庚午【宋度宗咸淳六年】。逆賊金同正領三別抄入據作亂。越四年癸酉【蒙古世祖至元七年】。命侍中金方慶討平之。

忠烈王三年丁丑【至元十四年】。元朝爲牧馬場。二十一年甲午。王朝元。請還耽羅。元承相完澤等奏奉聖旨。其耽羅。可還隷高麗。翊年乙未【元貞元年】。改耽羅爲濟州。始以判秘書省事崔瑞爲牧使。二十六年庚子【大德四年】。皇太后亦放廐馬。三十一年乙巳【大德九年】。還屬本國。

忠肅王五年戊午【元仁宗延祐五年】。草賊士用嚴卜起兵構亂。土人文公濟擧兵盡誅之。聞于朝。復置官吏。

恭愍王十八年己酉【大明洪武二年】。元牧子哈赤跋扈殺害官吏。越六年甲寅八月。國家遣都統使崔瑩。討滅哈赤。復置官吏。

本朝太宗二年壬午。星主高鳳禮。王子文忠世等。星主。王子之號。似涉僭擬。請改之。以星主爲左都知管。王子爲右都知管。

진산-한라산. 주의 남쪽, 일명 두무악 또는 원산이라 한다. 그 고을 관원이 제사를 지내는데, 둥그스름하고 높고 크며, 그 꼭대기에는 큰 못이 있다.

호수 5,207호, 인구 8,324명

군정은 2,066명. 마군 843명, 보군 1,223명

토성이 고·양·부요,

인물-문하 시랑 고조기 (의종)

그 땅의 기후가 따뜻하며, 풍속이 미욱하고 검소하다.

간전 3,977결【논이 31결】

토의가 밭벼·기장·피·콩·메밀·밀보리이다.

토공이 대모·표고·우무·비자·감귤·유자·유감·동정귤·금귤·청귤·돌귤·전복·인포·퇴포·조포·오징어·옥두어·곤포·돌유자나무·이년목·비자나무·좋은 말이요

약재는 진피·마뿌리·석골풀·초골풀·소태나무열매·구리대뿌리·팔각·영릉향·오배자·치자·향부자·모과·묏미나리·푸른귤껍질·백변두·바곳·엄나무껍질·후박·오징어뼈·두충·순비기나무열매·석결명·끼무릇뿌리·누른국화·녹용·박상·회향·탱자껍데기.

읍석성【둘레가 910보】

봉화가 9곳 ①주의 동문【동쪽 별도】②별도【동쪽 원당】③원당【동쪽 서산】④서산【동쪽 입산, 또 동쪽 정의현 지말】⑤남문【서쪽 도도리산 】⑥도도리산【서쪽 수산 】⑦수산【서쪽 고내 】⑧고내【서쪽 곽산 】⑨곽산【서쪽 판포산, 또 서쪽 대정현 차귀산】

목장【말이 3,352필이다】

鎭山。漢拏。在州南。一曰頭無岳。又云圓山。其官行祭。 穹隆高大。其巓有大池

戶五千二百七。口八千三百二十四。軍丁。二千六十六名【馬軍八百四十三名。步軍一千二百二十三名】

土姓。高•梁•夫。人物。門下侍郞。高兆基。毅宗時人。

厥土風氣暖。俗癡儉。墾田。三千九百七十七結【水田三十一結】

土宜。山稻•黍•稷•菽•喬麥•麰麥。

土貢。玳瑁•蔈膏•牛毛•榧子•柑子•柚子•乳柑•洞庭橘•金橘•靑橘•山橘•全鮑•引鮑•槌鮑•條鮑•烏賊魚•玉頭魚•昆布•山柚子木•二年木•榧子木•良馬。藥材。陳皮•山藥•石蔛•草蔛•川練子•白芷•八角•零陵香•五倍子•梔子•香附子•木瓜•柴胡•靑皮•白萹豆•草烏頭•海東皮•厚朴•烏魚骨•杜沖•蔓荊子•石決明•半夏•黃菊•鹿茸•舶上•茴香•枳殼。 

邑石城【周回九百十步】

烽火九處。 州東門【東准別刀】別刀【東准元堂】元堂【東准西山】西山【東准笠山。又東準旌義縣只未山】南門【西准道道里山】道道里山【西准水山】水山【西准高內】高內【西准郭山】郭山【西准板浦山。又西準大靜縣遮歸山】

牧場。【馬三千三百五十二匹】

영이-고려 목종 5년 임오 6월에 탐라산에 구멍 네 개가 뚫려서 시뻘건 물이 치솟아 올랐고, 10년 정미에는 해중 가운데 산 하나가 솟아나왔다.

탐라에서 보고하니, 왕이 태학 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가서 조사하게 하였다.

탐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솟아나오는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고, 벼락치는 것같이 땅이 움직였습니다. 무릇 7주야가 지나서야 비로소 개었는데, 산에는 풀과 나무가 없고, 연기만이 그 위를 덮고 있습니다.

바라다 보니, 석류황 같기도 하여 사람이 갈 수가 없습니다.”하였으나, 전공지가 몸소 산 아래에까지 나아가 그 모양을 그려서 나라에 바쳤다.

속설에 전하기를, “한라산 주신의 아들 계제가 살아서 거룩한 덕이 있었으므로 죽어서 명신이 되었는데, 마침 호종단이 이 땅을 진무하는 제사를 지내고 배를 타고 강남로 떠나려 할 때, 신이 매로 화하여 날아서 돛대 꼭대기에 올라 앉았는데, 조금 있다가 북풍이 크게 불어 호종단의 배가 난파되어 서쪽 지경인 비양도의 암석 사이에 침몰하였다.

나라에서 그 신령함을 포장하여 식읍을 하사하고, 광양왕으로 봉하였는데, 해마다 나라에서 향과 폐백을 내려서 제사를 지낸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5책 667면

靈異。高麗穆宗五年壬寅六月。耽羅山開四孔。赤水湧。十年丁未。有山湧出海中。

耽羅以聞。王遣太學博士田拱之。往驗之。

耽羅人言。山之出也。雲霧晦【暝日】。地動如雷。 凡七晝夜。始開霽。 山無草木。烟氣?其上。

望之如石流黃。人不能進。拱之躬詣山下。圖其形以進。

諺傳云。漢拏山主神子季弟。生有聖德。沒爲明神。適値胡宗旦鎭禳此土。乘舟向江南。神化爲鷹。飛上檣頭。俄而北風大吹。擊碎宗旦之舟。沒于西境飛揚島巖石閒。

 國家褒其靈異。賜之食邑。封爲廣壤王。歲降香幣以祭。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5책 667면

 

제주도
◎조선왕조실록◎ 

1.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윤11월 19일 임술 3번째기사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

사간원에서 상소하여 부·주·군·현의 이름을 정하자고 청하였다. 상소의 대략은 이러하였다.

"생각건대, 예전으로부터 제왕이 일어나매 반드시 일대의 제도를 세워서 일대의 이목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 비록 성인으로서 성인을 이었으나 제도·문물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때에 따라서 덜고 보탠 것은 새 것을 취하고 묵은 것을 고치어 서로 인습하지 않은 것을 보인 것입니다. 옛적에 황제가 주를 나누는 제도를 처음으로 베풀었고 이 천하를 나누어 12주를 만들었고 가 다시 9주를 만들었고 삼대 이대로 당나라·송나라에 이르기까지 비록 연혁은 같지 않으나, 주·부·군·현의 이름은 정연하게 차서가 있었습니다.

전조의 성시에 3유수·8목·4도호부를 두고 군과 현은 각각 그 땅의 가까운 것을 따라서 큰 고을에다 나누어 예속시키었는데 족히 정령을 행할 수 있고 백성들이 번잡하고 가혹한 폐단을 받지 않았습니다. 쇠퇴한 말년에 이르러 권간이 정치를 마음대로 하여 법령이 폐하고 해이해져서 무릇 주와 군이 혹은 한 재상이 정치를 잡거나 혹은 환시가 천정에 들어가 입시하였다가 사명을 받들고 환향하거나, 혹은 승이 왕사나 국사가 되면 반드시 말하기를 ‘아무 고을은 내가 난 땅이라.’ 하여 권세를 타서 요구하고 청하여 혹은 부곡을 승격하여 감무를 만들고 혹은 군과 현을 승격하여 주를 만드니 이 때문에 군과 현의 이름이 날로 뛰어오르게 되었으나 토지의 넓고 좁은 것과 인민의 많고 적은 것이 그 이름에 맞지 않고 또 주·부·군·현이 각각 정해진 이름이 있는데 혹은 주를 부라 칭하고 혹은 현을 주라 칭하여 명기가 혼잡하고 어지러워졌습니다.

지금에도 오히려 묵은 폐습을 따라서 환시가 사명을 받들고 오는 자가 다시 간청함이 있어 청산상주 임내로서 따로 감무가 되고 보안은 감무로서 승격하여 현령이 되고 괴주는 감무로서 승격하여 지주가 되고 김제는 현령으로서 승격하여 지군이 되고 임주는 주로서 승격하여 부관이 되었습니다. 또 지금 환자 35인이 조정에 갔으니 만일 후일에 사명을 받들고 돌아오면 또한 반드시 청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 말을 다 따른다면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옛적에 한 고조가 패읍에서 낳았고 광무제가 용릉에서 일어났으나 패읍과 용릉을 승격시켜 아무 주 아무 군으로 만들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본국만이 한 재상과 한 사신을 위하여 주현의 명실을 가볍게 고칠 수 있습니까? 대저 작은 고을을 가호하는 것은 그 폐단이 한 가지가 아닙니다. 토지가 좁은 것은 그 땅을 보태자고 청하고 인민이 적은 것은 백성을 보태자고 청하고 늠록과 아봉이 또한 모두 증가되어 토지와 인민이 서로 침삭당하여 서로서로 탄식하고 원망하여 소송이 끊이지 않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여러도의 주·부의 제도를 밝히어 마땅한 것을 헤아려서 이를 개혁하여 주·부·군·현의 명호와 등급을 한결같이 장뒤에 아뢴 바와 같이 하여 3유수부는 1등을 만들고. 5대도호부·10주목은 2등을 만들고. 20부관은 3등을 만들고. 그 나머지 부·주·군은 모두 군으로 고쳐서 지군사라 칭하여 4등을 만들고. 현령·감무는 모두 현으로 만들어서 지현사라 칭하여 5등을 만들고. 문자로 서로 통하는 정식과 늠급·아봉의 수량은 한결같이 《경제육전》의 예에 의하여 매양 목에만 주라 칭하고 부와 군에는 모두 주라 칭하지 말아서 주·부·군·현으로 하여금 각각 정한 이름이 있어 찬연하게 질서가 있게 하여 큰 것으로 작은 것을 부리고 아랫 것으로 윗 것을 이어받게 하면 저절로 통속이 있고 정령이 행하여질 것입니다.

상항의 사신의 간청으로 인하여 명호를 뛰어올린 것은 모두 예전대로 회복하고 지금부터 밝게 일대의 제도를 세워서 비록 후비의 고향과 사신·재상·왕사·국사가 출생한 땅이라 하더라도 모두 예전 그대로 하여 명호를 더하지 말고 무릇 군·현이 감히 조령을 준수하지 않고 권력에 붙고 의탁하여 난잡하게 간청하는 자가 있으면 엄하게 규리를 행하여 일대의 이목을 새롭게 하고 영원히 만세의 규범)을 삼으소서

완산·평양·계림은 3유수를 삼으소서. 위의 세 부는 모두 예전 왕자의 도읍이니 마땅히 유수로 칭하여야 합니다.

의주의순으로 고치고, 안주안흥으로 고치고 길주길안으로 고치고 강릉은 예전대로 하고 제주탐라로 고치어 5대도호부를 삼으소서. 위의 다섯 부는 모두 국경의 거진이니 마땅히 도호부로 칭하여 군민의 책임을 겸하여 맡게 하소서.

해주·광주·충주·청주·원주·나주·상주·진주·성주의 아홉 주는 모두 예전 목으로서 오래되고 큰 것이니 마땅히 예전대로 하여야 합니다.

안동대도호부는 복주목으로 고치소서 위의 부는 봉강의 경계나 병융의 땅도 아니니 마땅히 목으로 칭하여야 합니다.

양주양원으로 고치고, 김해·영해·남원·순천·강화·연안·여흥·경원·강계·이성의 12부는 호를 그대로 하고

공주공산으로 고치고 홍주안평으로 고치고 광주화평으로 고치고 황주제안으로 고치고 함주는 함녕으로 고치고 정주정원으로 고치고 청주청해로 고치소서. 위의 일곱 주는 모두 신설한 목이니 마땅히 강등하여 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밀성군은 승격하여 밀양부를 삼으소서. 위의 부는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서 실로 경상도의 큰 고을이니 마땅히 승격하여 부를 삼아야 합니다.

그 나머지 장신한 이외의 것으로서 예전에 주·부라고 일컫던 것은 토지와 인민이 모두 상항의 주·부에 미치지 못하니 일례로 고쳐 군을 삼아서 지군사라 칭하고 현령·감무는 전조 말년에 모두 부사·서도의 용렬한 무리들이 제수를 받았으므로 지금의 조사가 그 이름을 익히 들어서 수령을 제수할 때를 당하면 모두 다 싫어하니 지금 마땅히 일례로 고쳐 현을 만들어서 현사라 칭하여 그 이름을 새롭게 하소서." 명하여 의정부에 내려서 두 부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여 아뢰게 하였다.

사헌부에서 좌사간 안노생 등을 탄핵하여 상소하기를 "간관은 군상의 과실과 시정과 득실을 규간하고 고핵하는 것이 직책이요, 주·부·군·현의 관품을 올리고 내리며 관호를 변경하고 고치는 것은 마땅히 위로부터 나와서 정부에 내리어 토지의 넓고 좁은 것과 인민의 많고 적은 것을 의논하여 정해서 행할 것입니다. 이제 안노생 등이 임의로 상정하여 몽롱하게 신문하였으니 신자의 분수에 참람하고 간관의 직임에 어그러집니다. 청컨대 직첩을 거두고 국문하여 죄를 논하소서."하였다.

삼부에 내려서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삼부에서 함께 의논하고 말하기를, "사헌부에서 간관 노생 등이 주·부의 관호를 마음대로 상정한 것이 분수에 참람하고 직임에 어그러졌다 하여 직첩을 거두고 국문하여 죄를 논하기를 청하였사온데 간관이라는 것은 인군의 거조와 국가의 휴척에 대하여 감히 말하지 않는 것이 없고 말이 비록 맞지 않더라도 또한 너그러이 용납하는 것입니다. 관호의 차등을 의논하여 분정한 것이 비록 분수에 참람하나 직첩을 거두고 국문하는 것은 실로 지나친 것입니다. 대간원이 공죄를 범한 자가 있으면 그 사람 한 사람만을 핵문하여 명령을 받는 것이 이미 영전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 헌부에서 간관을 모조리 탄핵하였으니 또한 마땅한 것을 잃은 것입니다."하였다.

상이 헌부에서 논하기를 청한 것이 과당하여 유사의 도리에 어긋남이 있다 하여 모두 그 직책을 파하고 좌사간 안노생 등도 또한 부당하다 하여 모두 밖으로 좌천시키었다.

좌정승 하윤이 아뢰기를 "간관은 인군의 거조와 국가의 휴척에 대하여 직언하지 않음이 없으니 말이 비록 맞지 않더라도 죄를 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 헌사의 청으로 인하여 간관에게 죄를 가하시면 후세에 전하를 어떻다 하겠습니까?"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판하한 것이 하루도 못되어 문득 고치는 것은 불가하다."하니

윤(崙)이 말하기를 "허물을 알고 즉시 고치는 것은 이것이 인군의 대덕이요, 알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은 이것은 인군의 큰 잘못입니다. 한나라에서 장차 육국을 봉하려고 하여 이미 인을 만들었는데 장양이 불가하다고 말하매 고제가 곧 고치었는데 사책에 이를 써서 지금까지 전하니 원컨대 전하께서는 간관을 죄주지 마옵소서."하였다.

그러나 근시하는 신하들이 모두 간관을 그르다 하기 때문에 상이 윤허하지 않았다.

○司諫院上疏, 請定府州郡縣之號。

疏略曰:

竊惟自古帝王之興, 必建一代之制度, 以新一代之耳目, 故雖以聖繼聖, 至於制度文爲, 必因時損益者, 所以鼎新革故, 示不相沿也。 昔者, 黃帝肇設分州之制, 分天下爲十二州, 復爲九州。 三代以降至于, 雖沿革不同, 然而州府郡縣之號, 秩然有序。

前朝盛時, 置三留守八牧四都護府, 其郡縣各以其地之附近, 分隷巨邑, 足以行其政令, 民不見其煩苛之弊。 及其衰季, 權奸擅政, 法令廢弛, 凡州若郡, 或有一相執政, 或宦寺入侍天庭, 奉使還鄕, 或有僧爲王師國師, 必曰: "某邑, 予所生之地。" 乘勢干請, 或以部曲而陞爲監務, 或以郡縣而陞爲州。 由是郡縣之號, 日就超昇, 土地廣狹, 人民多少, 不稱其名。 且州府郡縣, 各有定名, 或以州而稱府, 或以縣而稱州, 名器混淆。

今也尙循舊弊, 宦寺奉使者, 復有干請, 靑山尙州任內, 而別爲監務; 保安以監務, 而陞爲縣令; 槐州以監務, 而陞爲知州; 金堤以縣令, 而陞爲知郡; 林州以州, 而陞爲府官。 且今宦者三十五人赴朝廷, 儻於後日, 奉使而還, 則亦必有請。 若盡從其言, 則弊有不可勝言者。

昔者, 生於沛邑, 光武起於舂陵, 未聞陞沛邑舂陵爲某州某郡。 豈獨本國爲一宰相一使臣, 輕改州縣之名實哉! 夫以小邑而加號, 其弊非一。 土地之狹者, 則請益其地, 人民之少者, 則請益其民, 廩祿衙俸, 亦皆增益, 土地人民, 相見侵削, 互相咨怨, 訴訟不已。

願殿下明諸道州府之制, 量宜沿革, 州府郡縣, 名號等級, 一如狀後所申。 三留守府爲一等, 五大都護府、十州牧爲二等, 二十府官爲三等, 其餘府州郡, 皆改爲郡, 稱知郡事爲四等; 縣令監務皆爲縣, 稱知縣事爲五等。 其文字相通之式, 廩給衙俸之數, 一依《經濟六典》之例, 每於牧但稱州, 於府及郡, 俱不稱州, 使州府郡縣, 各有定名, 粲然有序, 大以使小, 下以承上, 則自有統屬, 而政令行矣。

將上項因使臣干請, 超陞名號者, 悉復其舊, 自今明立一代之制, 雖后妃之鄕與使臣宰相王師國師所出之地, 幷仍其舊, 毋得加號。 凡郡縣敢有不遵條令, 夤緣附托, 亂雜干請者, 痛行糾理, 以新一代之耳目, 永爲萬世之規範。

完山平壤雞林爲三留守。 右件三府, 皆古王者之都, 當以留守稱之。

義州義順, 安州安興, 吉州吉安, 江陵仍舊, 濟州耽羅, 爲五大都護府。 右件五府, 皆封疆巨鎭, 當以都護府稱之, 兼掌軍民之任。

海州·廣州·忠州·淸州·原州·羅州·尙州·晋州·星州右件九州, 皆古牧之久且大者, 當仍其舊。

安東大都護府改福州牧。 右府非(封彊)〔封疆〕 之界 兵戎之地, 當以牧稱之。

楊州楊原金海·寧海·南原·順天·江華·延安·驪興·慶源·江界·泥城右十二府仍號。

公州公山, 洪州安平, 光州化平, 黃州齊安, 咸州咸寧, 定州定源, 靑州靑海。右件七州, 皆新設之牧, 當降爲府。

密城郡陞爲密陽府。右府地廣人稠, 實慶尙之巨邑, 當陞爲府。

其餘狀申外古稱州府者, 土地人民, 皆不及上項州府例, 改爲郡, 稱知郡事。 縣令監務, 在前朝之季, 皆府史胥徒闒茸之徒所得除授。 今之朝士, 習聞其號, 當守令除授之時, 率皆厭之。今當例改爲縣, 稱縣事以新其號。命下議政府, 與二府同議以聞。

司憲府劾左司諫安魯生等。上疏曰:諫官於君上過失、時政得失, 規諫考覈, 職也。 至於州府郡縣, 升降官品, 更改官號, 當自上出, 下於政府, 土地廣狹, 人物多少, 議定乃行。 今魯生等, 擅自詳定, 朦朧申聞, 僭於臣子之分, 乖於諫官之任。 請收職牒, 鞫問論罪。

下三府議聞。 三府同議以爲: "司憲府以諫官魯生等, 將州府官號, 擅自詳定, 僭分乖任, 請收職牒, 鞫問論罪。 諫官者, 人君擧措、國家休戚, 無不敢言, 言雖不中, 亦且優容。 官號差等, 議論分定, 雖僭於分, 收職鞫問, 實爲過當。 臺諫員有犯公罪者, 當該一員, 劾問取旨, 已有令典。 今憲府盡劾諫官, 亦爲失當。"

上以憲府請論過當, 有乖攸司之義, 皆罷其職; 左司諫安魯生等, 亦爲不當, 竝左遷于外。

左政丞河崙啓曰: "諫官於人主擧措、國家休戚, 無不直言, 言雖不中, 不可加罪。 今殿下因憲司之請, 加罪諫官, 則後世謂殿下何?"

上曰: "判不終日, 輒改之不可。"

曰: "知過卽改, 是人君之大德; 知而不改, 是人君之大不善也。 將封六國, 已鑄印, 張良曰: ‘不可。’ 高帝卽改之, 史冊書之, 傳之至今。 願殿下勿罪諫官。"

然近侍之臣, 皆以諫官爲非, 故上不允。

2.태종실록 29권, 태종 15년 1월 21일 경신 4번째기사 1415년 명 영락永樂 13년강화에 새 목장이 이룩되니 둘레가 6만 7천 1백 48척이었다.

호조 판서 박신이 아뢰었다."강화에서 말치는 목장의 목자는 일찍이 그곳의 백성을 정속시켰는데 그들이 마음으로 생각하기를한번 목자라고 칭하게 되면 종신토록 면치 못하게 되고 또 자손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목자란 이름을 면치 못하게 된다 하여 유리한 자가 이미 40여 호가 됩니다. 빌건대 목장 부근의 백성으로써 번 돌려가면서 사육을 돌보게 하고 선군의 예와같이 목자의 이름을 없애버린다면 유이하는 폐단이 없어질 것입니다."

상이 말하였다. "경은 내 뜻을 알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강화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사가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찍이
제주의 말을 용매도로 옮겨다 키웠는데 그 말이 제주의 말보다 나았다. 용매도는 땅에 돌과 자갈이 많아 요박하였으나 오히려 이와 같았는데 더욱이 강화는 땅이 기름지고 풀이 풍부한데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만약 강화의 땅으로 온전히 목장을 만들 수 있다면 제주보다 못하지 않을 줄로 나는 안다. 제주는 중국에서 자주 지칭하지만 그러나 또 해로가 험조하여 왕래할 때에 사람이 많이 빠져 죽으니 갑자기 급한 일이 있더라도 사용하게 되지 못하면 어찌 한갓 제주만 바라고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땅히 강화부로 이문하여 이사하는 백성들의 경작하던 전답을 백성들로 하여금 더 점유하지 못하게 하여 황야가 되도록 내버려두어서 강화 땅이 모두 목장이 되도록 한다면 군국의 말이 어찌 사용하는 데 여유가 있지 아니 하겠는가? 비록 양향이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도보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江華新牧場成, 周回六萬七千一百四十八尺。

戶曹判書朴信啓: "江華馬場牧子, 曾以其民定屬, 其心以爲, 一稱牧子, 終身未免, 且至子孫, 亦未免牧子之名, 而流離者, 已四十餘戶。 乞以牧場附近之民, 輪番看飼, 如船軍例, 使無牧子之名, 則流移之弊息矣。"

上曰: "卿不識予意, 予欲令江華之民移徙也。 曾移濟州之馬於龍媒島牧養之, 其馬勝於濟州之馬。 龍媒地多石磧磽薄而猶能如此, 況江華土厚草豐乎? 若以江華之地, 全爲牧場, 則予知不下於濟州矣。

濟州, 中國屢稱之, 而且海路阻險, 往來之際, 人多溺死, 卒有緩急, 不及於用, 豈可徒仰濟州而不慮乎?

宜移文江華府, 將移徙之民所耕田畓, 毋使民加占, 棄爲荒野, 期至江華之境, 盡爲牧場, 則軍國之馬, 豈不有餘用哉? 雖糧餉有餘, 徒步何能有爲?"

3.세종실록 11권, 세종 3년 1월 13일 병자 4번째기사 1421년 명 영락永樂 19년

예조에서 계하기를 "진상하는 물목 속에 경상도전라도에서는 홍시는 기재하였으나, 건시는 기재하지 아니하였고, 인포는 기재하였으나, 생전복은 기재하지 아니하였고, 함길도에서는 고등어는 기재하였으나, 내장젓은 기재하지 아니하였으며, 백산엿은 오직 전주에서만 만드는 것인데, 역시 등록되지 아니하였으니, 상의 여러 종류 물건들을 의당 진상하게 할 것이오며, 또 평안도고치와 냉동어와 제주의 감자와 유자와 동정귤과 유감과 청귤과 표고와 비자와 조곽과 원포와 인포와 조포와 추포와 오징어 등 물건도 또한 그 시절을 따라서 진상하게 하소서."하니, 제주에서 진상하는 것은 면제하도록 명하였다.

○禮曹啓: "進上物目內, 於慶尙全羅二道錄紅柿, 而不錄乾柿, 錄引鮑, 而不錄生鮑。 於咸吉道錄古道魚, 而不錄腹掌醢。 白饊飴糖, 惟産於全州, 而亦不載錄。 右件等物, 宜幷令供進。 且平安道之膏雉·凍魚· 濟州之柑·子·柚子·洞庭橘·乳柑·靑橘·蔈蒿·榧子·早藿圓鮑·引鮑·條鮑·搥鮑·烏賊魚等物, 亦將趁節供進。" 命除濟州進上。

4.세종실록 25권, 세종 6년 8월 6일 무신 5번째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사복 제조가 계하기를 "전번에 함길도에서 좋은 말이 많이 생산된 것은, 개원과 길이 통해 있었으므로 달단의 말과 교접하여 번식하였었는데, 이제 개원과 통하지 않은 지가 이미 50년이 되었으므로 달단의 말이 절종하였고, 또 제주는 비록 말을 생산하는 곳이지만 몸의 크고 성질이 순한 것이 생산되지 아니하여 장래가 염려되오니, 원컨대 경원·경성에 사는 사람을 시켜서 동맹가첩목아등 여러 곳에서 그들이 구하는 물건으로 몸이 큰 암수 종마와 교역하여 번식시키면 편리할 것입니다."

하니, 함길도 도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동맹가첩목아에게서 품질 좋은 달단의 암수 종마를 감영의 물건으로 그 곳 군민이 사사로이 사는 것처럼 사들이고, 곧 필수와 털빛과 나이를 계문하라."하였다.

○司僕提調啓: "前此咸吉道良馬多産者, 乃因開原路相通, 與韃靼馬孶息, 今與開原不通, 已五十年矣, 韃靼馬絶種。 且濟州雖産馬之地, 體大性馴者不産, 將來可慮。 願令慶源鏡城居人, 於童猛哥帖木兒等處, 以其所求之物, 交易體大雌雄種馬, 孶息便益。"

於是, 傳旨咸吉道都節制使曰: "於童猛哥帖木兒處, 品好韃靼雌雄種馬, 以營中之物, 如其界軍民私市者而市之, 卽將匹數毛齒啓聞。"

5.세종실록 39권, 세종 10년 1월 6일 기축 6번째기사 1428년 명 선덕善德 3년

제주 안무사가 보고하기를 "섬 안에 땅은 좁고 사람은 많은데, 목장이 절반이 넘어 소와 말이 짓밟기 때문에 곡식에 손해가 많습니다. 거민들은 오로지 말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사온데 요사이 암말을 육지로 내보내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에 비록 두 살짜리 수말이라도 다 팔아버리게 되니, 이 까닭으로 암말과 수말이 서로 고르지 못하여 번식이 점차 줄어들어 장대한 것은 1백 마리에 한두 마리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섬에 남아 있는 말이 본디 많기 때문에 밤낮으로 짓밟아 손상시키니, 초목이 성하지 못하여 비록 봄철이 되어도 살이 찌지 못하는데, 하물며 눈이 많이오게 된다면 파리해져 죽는 것이 퍽 많습니다. 그 사사 목장의 암말은 혹 3년 만에 한 차례씩, 혹 2년 만에 한 차례씩 육지에 내보내도록 허가하여 말먹이 건초를 번성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濟州按撫使報:

島內地窄人多, 牧場過半, 因牛馬踐蹂, 禾稼多損, 居民專以賣馬爲生, 近因雌馬出陸之禁, 雖二歲雄馬, 盡賣之。 以故雌雄不適, 孶息漸少, 壯大者百無一二。 然馬之留島者本多, 故日夜踏損, 草木不盛, 雖當春月, 不得豐肥, 況値雪深, 瘦死頗多。 其私場雌馬, 或三歲一次, 或二歲一次, 許令出陸, 以蕃芻茭。從之。

6.세종실록 50권, 세종 12년 12월 2일 무진 2번째기사

나주 목사 조환이 사조하니, 인견하고 말하기를, "나주는 지경이 제주와 연접하여 있기 때문에 도망치는 사람이 많으니 너는 가서 그들을 안무하라."하였다.

羅州牧使趙環辭, 引見曰: "羅州境連濟州, 人多逃移, 汝往撫綏。"

7.세종실록 70권, 세종 17년 12월 12일 기유 2번째기사 1435년 명 선덕宣德 10년

병조에서 정부·각 조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여 아뢰기를 "제주 세 고을에는 사람은 많은데 땅은 좁아서 민호가 9천 9백 35호이요, 인구가 6만 3천 93명이며, 전지는 9천 6백 13결 48 짐이므로, 토지의 이익은 한정이 있는데 밥 먹는 사람은 많아서, 흉년을 구제하는 폐단이 해마다 없을 때가 없으니,전지와 직업이 없는 양민은 각기 자원에 따라 육지로 옮겨 살게 하고, 사천도 또한 본 주인을 따라 자원하여 육지에 나오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兵曹與政府諸曹同議啓: "濟州三邑, 人多地窄, 民戶九千九百三十五, 人口六萬三千九十三, 田則九千六百十三結四十八卜。 地利有限, 食之者衆, 救荒之弊, 無歲無之。 無田業良人, 各從自願, 徙居陸地, 私賤亦從本主, 自願出陸。" 從之。

7.세종실록 104권, 세종 26년 4월 7일 병술 1번째기사 1444년 명 정통正統 9년

전라도 도관찰사 이맹진에게 교유하기를 "일찍이 들으니 제주 근처에 백도·흑도백산도·흑산 등의 섬이 있다는데, 이러한 섬이 제주 근처에 몇 개나 있는가. 만약에 있다면 공사의 선척이 이 여러 섬에 모두 다 내왕할 수 있겠는가. 또 바람과 물이 험악해서 내왕이 불편한 곳이 몇 섬이나 되며, 바람과 물이 험악하지 않고 내왕하기에 편리한 곳은 몇 섬이나 되는가. 제주 사람으로서 전라도에 나와 있는 자와 도내의 연변에 살면서 물에 익숙한 사람으로 하여금 찾아보고 계달하게 하되, 제주(濟州)에서 여러 섬 사이의 거리와 여러 섬 사이의 멀고 가까운 것과 거기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을 아울러 찾아 물어 보고 아뢰라."하였다.

○丙戌/諭全羅道都觀察使李孟畛:

曾聞濟州近地有白島•黑島•白山•黑山等島。 如此之島, 濟州近地有幾歟? 若多有之, 則公私船, 於諸島竝皆來往乎? 風水險惡, 來往不便者幾島? 風水不險, 來往便易者幾島歟? 其令濟州人本道出來者及道內沿邊習水人搜覓啓達。 自濟州至諸島相距及諸島之間相距遠近、所産之物, 幷訪問以啓。

8.세종실록 104권, 세종 26년 5월 21일 경오 4번째기사 1444년 명 정통正統 9년

상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여러 신하들이 이인김경재를 극형으로 처치하기를 청하매, 내가 제주로 귀양보내고자 했더니, 여러 사람이 이르기를, ‘제주는 비록 해중 섬이라고 하나 거리가 멀지 않아서 여기에 둠은 옳지 못하다.’ 하니 어떻게 처리할까. 그것을 의논하여 아뢰라."하니,

우찬성 황보인과 형조 판서 안숭선 등이 정부와 육조의 의논으로써 아뢰기를 "신 등이 반복하여 생각하여도 경재가 범한 죄는 강상에 관계되고 안을 어지럽힘이 가장 심하오니, 율문에 의하여 단죄하시기를 청하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극형으로 처치하지 않는 것은, 의 조모는 사람됨이 본래 성품이 명랑하여 사귀어 친한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사랑하는 버릇이 있어, 남들이 업신여기고 조소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으므로, 시녀와 사귀어 이렇게 된 것이다. 경재가 조모와 서로 친해서 내왕하였기 때문에 지나치게 친했다 함은 옳으나, 그러나 극형으로 처치하자는 것은 내가 차마 할 수 없다."하였다.

이 다시 아뢰기를 "이런 죄는 예전에도 없던 바이며, 등이 비록 무지하더라도 이런 일은 인신으로 할 바가 못되오니, 신 등의 소망을 따르시기 바라옵니다."하니

상이 말하기를 "전대에는 혹 이러한 일이 있었으나 아조에 와서는 있지 않았으니, 경 등의 말이 옳으나, 그러나 실정을 얻지 못하였으니 끝내 극형을 가할 수는 없다."하였다.

○上謂承政院曰: "啓事諸臣請置敬哉極刑, 予欲編配濟州, 僉謂: ‘濟州雖云海島, 程途不遠, 置之於此, 不可。’ 何以處之? 其令擬議以啓。"

右贊成皇甫仁刑曹判書安崇善等將政府六曹之議啓: "臣等反復思之, 敬哉所犯, 關係綱常, 內亂莫甚, 請依律斷罪。"

上曰: "予不加誅者, 之祖母爲人, 性本孟浪, 若有交親之人, 則有偏愛之癖, 不恤人侮笑, 故交結侍女, 以至於此。 敬哉輩因祖母相交來往, 謂之褻狎則然矣, 然置之極刑, 則予不忍也。" 更啓: "此罪, 前昔所無。 等雖曰無知, 如此之事, 非人臣所爲也, 請從臣等之望。" 上曰: "前代或有如此之事, 我朝以來所未有也。 卿等之言是矣, 然未得實情, 終不可加極刑也。"

9.정리 되는대로 계속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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