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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마강(白馬江)

백마강(白馬江)은 백제의 사비하(泗沘河)라고 한다. 백마강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조선후기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년) 의해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16세기 초 민제인(閔齊仁.1493~1549년)의 시.

백마강부(白馬江賦)   望三千其如雲 구름 같은 삼천궁녀 바라보니   …  조선시대 또는 그 이전에 이미 백마강으로 이름이 불린듯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부여(扶餘)편에서 백마강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산천(山川).   白馬江. 在縣西五里良舟浦及金剛川與公州之錦江合流爲此江入林川郡界爲古多津

부여현의 西쪽 5리에 있다. 양주포(良舟浦)와 금강천(金剛川)이 공주의 금강(錦江)과 합류하여 백마강이 된다. 그리고 임천군(林川郡)으로 들어가 고다진(古多津)이 된다.

그런데 백마강 상류에 있는 석탄(石灘)은 현(縣)의 동쪽에 있게 된다.

  石灘. 在縣東十二里白馬江上流

석탄(石灘)은 현(縣) 東 12리 백마강의 상류에 있다.

석탄(石灘)에 붙여진, 안노생(安魯生)의 석탄정기(石灘亭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안노생은 생몰년 미상인데, 여말선초의 문신으로 1391년 공양왕때 그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在公山錦江之西扶餘半月之東其源出自鷄龍經公山南折而西乃與錦江合洄洑而南入于海.

  (석탄은) 공산(公山) 금강(錦江)의 西쪽, 반월성(半月城)의 동쪽에 있다.

계룡산으로부터 발원하여 공산(公山)의 南쪽으로 경유하여, 꺾여 西에서 금강과 합류한다. 그리고 역류(逆流)하며 휘돌아 南쪽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부여현(扶餘縣)의 위치를 보면 東쪽으로는 공주계(公州界) 24리에 이른다고 되어있다.   공주목(公州牧)에서는 南 49리에 부여현의 경계가 있다고 했다.

공주는 부여의 東北에 있다.   반월성(半月城)은 부소산 아래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半月城. 石築周一萬三千六尺 卽古百濟都城也 拕扶蘇山而築兩頭抵 白馬江形如半月故名 今縣治在其內.

반월성(半月城). 석축으로 둘레가 1만3천6 척이다. 즉 옛 백제의 도성이다. 부소산을 끌어들여(자락에) (궁궐의) 양(兩) 머리로 (부소산을) 누르고 지어졌다. 백마강의 형세가 마치 반달과 같은 고로 반월성(半月城)이라 이름했다…

부소산(扶蘇山)은 현(縣)의 北쪽에 있다.

  扶蘇山. 在縣北三里鎭山東岑有坡陀處號迎月臺西岑曰送月臺

부소산. 현(縣) 北쪽 3리에 있는 진산(鎭山:도읍의 뒤에 자리잡고 있는 산)이다. 동쪽 봉우리에 험한 고갯마루가 있는데 영월대(迎月臺)라 한다. 서쪽 봉우리를 송월대(送月臺)라 한다.

현재의 부여 위치에 놓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산천(山川)과 고적(古蹟)의 위치와 거리를 표시해보았다.

그럼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따라 백마강(白馬江)을 흐름을 따라가보자.

1. 백마강의 상류에는 석탄(石灘)이 있다. 현의 동쪽 12리에 있다.  강줄기가 남북으로 흐른다는 뜻이다.   안노생(安魯生)의 석탄정기(石灘亭記)에 의하면, 석탄은 공산(公山) 금강(錦江)의 西쪽, 반월성(半月城)의 동쪽에 있다.

계룡산으로부터 발원하여 공산(公山)의 南쪽으로 경유하여, 꺾여 西쪽에서 금강과 합류하고, 역류(逆流)하며 휘돌아 南쪽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석탄은 바로 東에서 北으로 역류하는 굽이(曲)에 있다.

  이존오(李存吾)의 석탄(石灘)을 노래한 시(詩)에.

  百濟古國長江曲 백제 옛 나라가 있던 장강(長江)의 굽이

  石灘風月閑幾年 석탄의 풍월로 한가하기 몇 해던가.

2. 北으로 굽어 비스듬히 역류하면 현(縣)의 東에서 東北에 이르게 된다. 그 東北 7리에 광지포(光之浦)가 있다.

3. 그리고 백마강은 서쪽을 향해, 부소산 북쪽으로 흐르게 된다.  현(縣)의 북쪽 23리로부터 금강천(金剛川)이 흘러들어와 백마강과 합류한다.   강(江)의 북쪽 10리에는 천정대(天政臺)가 있다. 강줄기가 東西로 흐르고 있음이다.

天政臺. 縣北十里許江北絶巘有巖如臺下臨江水 諺云百濟時欲拜宰相…

천정대(天政臺). 부여현(扶餘縣) 북쪽 10리에 있다. 강 북쪽에 깎아지른 절벽과 같은 누대가 있는데, 아래로는 강수(江水:長江)가 흐르고 있다…

4. 北에서 금강천과 합류한 백마강은 휘돌아 南으로 내려온다.

물줄기가 다시 남북으로 흐른다. 부소산 아래로 낙화암(落花岩)과 조룡대가 있다.부소산은 현의 북쪽 3리에 있고, 낙화암(落花岩)은 현의 북쪽 1리 조룡대(釣龍臺) 서쪽에 있다. 반월성에서 부소산으로 가기 전, 서쪽 강가에 있게 된다.

  扶蘇山. 在縣北三里.落花岩. 在縣北一里釣龍臺西有巨岩.

5. 낙화암으로부터 강물을 따라 아래로(南으로) 내려가게 되면, 현의 서쪽 5리에 자온대(自溫臺)가 있다.

  自溫臺. 在縣西五里 落花岩順流而西有恠岩跨于水渚可㘴十餘人 諺傳百濟王遊于此岩則岩自溫故名.

자온대. 현의 서쪽 5리에 있다. 낙화암에서 물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게 되면 서쪽에 기이한 암석이 물가에 걸터앉은 듯하다. 십여 명이 앉을만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백제왕이 이 바위에서 유흥을 즐길 때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진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6. 현의 서쪽 7리에는 양단포(良丹浦)가 있다. 현의 서쪽 30리 나소현(羅所峴)에서 발원하는 물이 백마강으로 들어오는 초입에 있다.

  白馬江. 在縣西五里良舟浦及金剛川與公州之錦江合流爲此江.

  良丹浦. 在縣西七里源出羅所峴.

  羅所峴. 在縣西三十里.

7. 南으로 흘러내리던 백마강은 다시 휘돌아 반월성 앞쪽으로 흐르게 된다. 南北에서 東西로 물길을 바꾸게 된다.  이때 백마강의 이름은 고성진(古省津), 즉 사비하(泗沘河)가 된다.  古省津. 卽泗沘河在扶蘇山下

조위(曺偉)의 부여회고 시(詩)에.

扶蘇之陽泗泚河 부소산 남쪽(陽) 사비하에  何年南徙來爲家 어느 때에 남쪽으로 옮겨 나라를 세웠던고.

8. 현(縣)의 남쪽 7리에는 대왕포(大王浦)가 있다. 사비하의 북포(北浦), 즉 반월성의 남쪽 강변이 된다. 즉 오산(烏山)의 물이 백마강으로 유입되는 곳이다.

대왕포의 물은 현의 남쪽 7리 오산(烏山)에서 발원하여 서쪽 백마강으로 들어간다.

  大王浦. 在縣南七里源出烏山西入白馬江 ○百濟武王每率羣臣遊泗沘河北浦…烏山. 在縣南七里.

위에 열거된 부여의 산천(山川)과 고적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다음 지도는 현재의 공주와 부여 일대를 표시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계룡산에서 발원한 물은 공산(公山)의 남쪽을 지나게 된다. 그러나 위의 지도에는 계룡산과는 무관하게 공산의 북쪽으로 금강(錦江)이 흐르고 있다.

위의 두 지도를 비교해보면, 많은 부분이 어긋남을 볼 수 있다.  공산(公山)과 낙화암의 위치, 백마강의 흐름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특히 낙화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반월성에서 부소산으로 가는 서쪽 강가에 있다. 부소산 남쪽의 서쪽 강가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금 부여에는 부소산의 북쪽 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공주의 공산(公山)은 해발 110m, 부여의 부소산은 해발 106m에 불과하다. 도성(都城)의 진산(鎭山), 왕성(王城)의 병풍 구실을 하기에는 어림없을 야산에 불과하다.

부여 회고(回顧)를 노래한 시(詩)를 따라 부여를 떠올려보자.

  이곡(李穀)의.

  一旦金城如解瓦 하루아침에 철옹성(金城) 무너지고

  千尺翠岩名落花 1천 척(尺) 푸른 바위 낙화(落花)라 이름했네.

  이존오(李存吾)의.

  落花峯下波浩蕩 낙화봉 아래 물결이 호탕

  정도전(鄭道傳)의.

  石面立削鐵 석벽은 쇠를 깎아 세운 듯하고

  灘流奔長虹 여울은 긴 무지개가 달리는 듯.

  정약용(丁若鏞)의, 
  惟看鐵甕橫江岸
강기슭을 가로막는 철옹성만 보았기에

당시 반월성(半月城)은 철옹성과 같았던 모양.

북으로는 부소산이 버티고 있고, 북쪽과 서쪽을 휘돌아 흐른 백마강은 남쪽 반월성 앞에 이르러 사비하(泗沘河)가 되고, 강 연안에는 험준한 바위들이 철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허리띠처럼 반월성을 감싸고 있는 백마강. 거친 암석들과 세찬 물결이 부딪쳐 물보라를 일으키고. 물보라는 햇빛을 받아 무지개를 피어 올리니. 강은 그 무지개가 달리는 듯.

석탄(石灘)은 그러한 호탕한 강의 상류 - 부여의 동쪽, 공주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의 백마강은 공주의 서쪽에서 부여의 북서쪽을 향해 흐르고 있다.

조선시대 즈음에 백마강(白馬江)으로 불리듯, 중국역사지도집에서는 원(元) 시기에 처음으로 사천성 성도(成都) 일대에 백마강(白馬江)이 나타난다.

백마강의 이름에 대해서는, 검색에 의하면, 흰 비단을 굽이굽이 펼쳐놓은 듯하다 하여 명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감숙성 경계에서 사천성 성도(成都) 일대의 강수(江水)와 지명에는 백마(白馬) 관련어가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수경주소(水經注疏) 2736∼.  大江出汶山…至白馬嶺(…龍涸北四十里有白馬關, 關甚險峻…白馬嶺在松潘廳西北, 古白馬羌地, 今白馬夷地…)

…《益州記》曰..自白馬嶺回行, 二十餘里至龍涸.《華陽國誌》, 蜀時以汶山險要, 自汶江, 龍鶴, 冉駹, 白馬, 匡明皆置戌守 卽龍涸也…卽今成都府廣都縣龍爪灘之地. 守敬按..《沙州記, 龍涸北》四十里有白馬關, 卽龍涸在白馬之南…

…東南流至武陽縣, 注于江…  宋, 元以來, 皁江爲正源. 近時南流數道, 有金馬, 羊馬, 白馬除名, 而皁江之名又混. 《新津縣志》, 岷江正派曰白馬河…

  縣有赤水, 下注江. 守敬按.. 今曰龍溪河… 建安二十九年, 有黃龍見此水, 九日方去…

백마령(白馬嶺)·백마관(白馬關)·백마강(白馬羌)·백마이(白馬夷)·주마(走馬)·금마(金馬)·양마(羊馬)·백마(白馬)에 용학(龍涸)·용조탄(龍爪灘)·용계하(龍溪河)·황룡(黃龍) 등.

소정방(蘇定方)이 백마강(白馬江)에서 용(龍)을 낚았다는 전설이나, 금마산(金馬山), 계룡산(鷄龍山)을 떠올려 봄직하다.

그러나 ‘백마(白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길이 없다. 고대어의 차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한(馬韓)과 백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일대는 고대의 백마이(白馬夷)의 활동지역이었다. 

수경주소(水經注疏)에는 금강(錦江)이 검강(撿江) 또는 검강(檢江)으로, 검강(檢江)은 유강(流江)이라고 되어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는 유강(流江)이 곧 금강(錦江)이라고 했다.

  수경주소 2733∼2744쪽.

  江水又歷都安縣. 縣有桃關(注. 敬按 守敬按..《通典》汶川縣故桃關, 公私經過唯此路. 《元和志》, 在汶川縣南八十二里. 在今汶川縣南)

…李冰作 大堰于此. 壅江作塴. 塴有左右口. 謂之湔塴, 江入郫江, 撿(注.趙作檢, 下同)江以行舟. 《益州記》..江至都安堰其右, 撿其左, 其正流遂東. 郫江之右也.(注. 守敬按..其左下當脫郫字, 蓋右爲檢江, 左爲郫江, 檢江卽流江, 在郫江之右, 世以爲大江正流, 故云其正流遂東, 郫江之右也)

강수(江水)는 도안현(都安縣)을 지난다. 현에는 도관(桃關)이 있다…

이빙(李冰)은 이곳에 큰 댐을 만들었다. 강을 막아 보를 만들었다. 보 좌우에 (물이 흐를 수 있는) 수구(水口)를 만들었다. 이것을 전붕(湔塴)이라 한다.

강은 비강(郫江)과 검강(撿江. 檢江)으로 들어가는데, 강에는 배가 다닐 수 있다.

익주기(益州記)에 의하면, 강은 도안언(都安堰) 그 오른쪽에 이르는데, 그 오른쪽은 검강(撿江)이요, 그 왼쪽은…. 정류(正流)는 동쪽을 따른다. 비강(郫江)의 오른쪽이다.  (주. 양수경이 살펴보자면, ‘其左’ 아래에 ‘郫’자가 빠져있다. 대체로 오른쪽은 검강(檢江)이 되고, 왼쪽은 비강(郫江)이 된다. 검강(檢江)은 유강(流江)으로, 비강(郫江)의 오른쪽이며, 사람들은 대강(大江)의 정류(正流)로 삼는데, 그 까닭은 그 정류(正流)는 동쪽을 따르기 때문이다. 비강(郫江)의 오른쪽이다.)  2748쪽…

  守敬按..《括地志》, 大江一名汶江, 一名笮[原誤管.]橋水, 一名流[原誤靑.]江, 亦名外[原誤水.]江…《元和志》, 大江一名流江…

양수경이 살펴보자면, 괄지지(括地志)에 대강(大江)을 일명 문강(汶江), 착교수(笮橋水.管橋水), 유강(流江.淸江), 외강(外江.水江)이라 했다…원화지에 의하면 대강(大江)은 일명 유강(流江)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의하면. 금강은 부하(府河), 유강(流江), 또는 주마하(走馬河)라고도 한다.

통전(通典)에는 성도현(成都縣)에 금강(錦江)이 있다고 했고, 원화지(元和志)에는 대강(長江)이 지나는 성도현 남쪽 7리에 있으며, 일명 착교수(笮橋水)라 한다고 했다.

  錦江…俗名府河. 又名流江. 亦名走馬河. 自四川郫縣分岷江東流. 至華陽縣南. 合郫江. (通典) 成都縣有錦江. (元和志) 大江經成都縣南七里. 蜀中又謂笮橋水  

중국역사지도집 明시기

이문열 번역의 삼국지에 수록된 지도

이문열 번역의 삼국지에 수록된 금강(錦江)의 위치에는 성도(成都)의 내강(內江)에 해당하는 비강(郫江)의 흐름을 따라 그려져 있다.

명(明) 시기의 지도에는 강수(江水)의 정류(正流)로 치는 오른쪽 유강(流江)을 따라 강줄기를 표시했다.

어쩌면 당시에는 관현(灌縣)에서 갈라지는 두 장강(長江)의 줄기 -비강(郫江)·유강(流江)-모두를 금강(錦江)이라 지칭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금강(錦江)은 일명 주마하(走馬河). 그리고 성도 아래로 목마천(牧馬川), 성도의 왼편으로 금마하(金馬河), 백마강(白馬江)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성도 東南으로 용천진(龍泉鎭)이 있고, 아래로는 적수(赤水)가 흐르고 있다. 용계하(龍溪河)라고도 부른다.

  일대가 말(馬)과 용(龍) 일색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는, 강수(江水)가 관현(灌縣)에서 민강(岷江)과 나뉘어져 남쪽으로 내려오다가(沙溝河) 두 지류로 다시 갈라지고, 숭경현(崇慶縣) 동쪽으로 흐르는 강을 백마하(白馬河)라고 했다.

위의 지도에 표시된 백마강(白馬江)을 말한다.

  白馬水…見沙溝河. 沙溝河. 自四川灌縣分岷江南流. 爲(壽阝)江之西支. 南流又分爲二支. 一經崇慶縣東爲白馬河. 一慶崇慶縣西爲西河. 又南合流爲白西河…南與岷江會. 

지금으로서는 백제의 도성(都城) - 웅진(熊津)과 사비(泗沘)-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부를 해보지 않았으므로 꼭 집어 단정할 수는 없다.

더구나 중국역사지도집 속에 나타나는 백마강과 부여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다. 성도 일대를 타고 흐르는 강(江) 줄기의 절반에 고대에는 마(馬)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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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成都)의 남쪽에는 금관성(錦官城) 즉 금성(錦城)이 있다. 서성(西城)으로도 불리며, 한때는 성도(成都)의 통칭이었다.

신라말기 박인범(朴仁範)이 지은 칠언율시(七言律詩)「馬嵬懷古」를 보자.

   日旆雲旗向錦城 임금의 행차 금성(錦城)으로 향할 때

당 현종이 안녹산의 난을 피해 성도로 피난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금성(錦城)에 관한 수경주소(水經注疏)를 살펴보면, 금성을 에도는 流江(錦江)의 물길이 의미심장하다.

  水經注疏. 2754.

  …移夷里. 道西城, 故錦官也.《益州記》, 錦城在益州南, 笮橋東, 流江南岸, 蜀時錦官也, 其處號錦里…

《元和志》, 錦城在成都縣南十里, 故錦官城也, 在今成都縣西南… 江水東逕廣都縣…

…이리(夷里)는 서성(西城)을 말하는데, 옛 금관(錦官)이다. 익주기에 이르기를 금성(錦城)은 익주의 남쪽, 착교의 동쪽, 유강의 남쪽 언덕에 있다. 촉나라 때의 금관(錦官)이다. 그곳을 금리(錦里)라고도 한다…

원화지에는, 금성은 성도현 남쪽 10리에 있었다…지금의 성도현 서남이다. (여기에서) 강수(江水)는 동쪽을 지나 광도현(廣都縣)에 이른다. 흡사 부여의 백마강의 흐름과 닮았다.

유강(流江. 錦江)의 남쪽 언덕이라면, 금강은 금성의 북쪽으로 흐른다. 그리고 착교(笮橋)라는 다리의 동쪽이라면, 금성의 서쪽이다.  (錦江을 일명 笮橋水라고도 한다)여기에서 강수는 다시 동쪽으로 광도현(廣都縣)을 지나게 된다.

금성을 에워싼 물길이 東西, 南北으로 종횡무진하며 금성을 허리띠처럼 둘러싸고 있다.

예전의 일이다. 이병도(李丙燾) 역주의 삼국사기를 읽던 중에 백제 무왕(武王) 35년에 왕흥사(王興寺)가 낙성되었는데, 강수(江水)에 임하고 채식이 장려하다는 문구를 보았다.

  三十五年 春二月 王興寺成 其寺臨水 彩飾壯麗 王每乘舟 入寺行香

그리고는 강수(江水)를 금강(錦江)의 지류로 토를 달아 놓았길래,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었다.

왕흥사는 법왕(法王) 2년(600년)에 시작하여 무왕(武王) 35년(634년)에 완성된, 35여년간에 걸쳐 이룩되었다는 엄청난 대찰이다.

의자왕(義慈王) 20년 6월의 기록을 보면, 왕흥사 승려들은 모두, 마치 배의 돛과 같은 것이 대수(大水)를 따라 절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고 되어있다.

당(唐)의 침공을 예고하는 기록이다.

  二十年 六月 王興寺衆僧皆見 若有船楫隨大水入寺門

그런데 위의 기록을 꼼꼼히 뜯어보면 왕흥사는 배를 타고 절문까지 들어갈 수 있는 물가에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사계절 강우량의 폭이 크고, 대체적으로 강의 흐름을 따라 양안으로 모래밭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사서(史書)의 기록에는 지명(地名)에 따른 수명(水名)을 뚜렷이 밝힌다.

수(水)·대수(大水)·강수(江水)·대강(大江)·장강(長江)으로 나타나는 부여의 강. 또한 장강(長江)을 수강(水江)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럼 신증동국여지승람 부여 편에 나오는 강(江)의 이름을 보자.

이존오(李存吾)의 석탄(石灘)을 노래한 시.

  百濟古國長江曲 백제 옛 나라 장강(長江)의 구비

  石灘風月閑幾年 석탄 풍월에 한가하기 몇 해던가.

  고적(古蹟)편, 천정대(天政臺)에는

  天政臺. 縣北十里許江北絶巘有巖如臺下臨江水 諺云百濟時欲拜宰相…

부여현(扶餘縣) 북쪽 10리쯤에 있다. 강 북쪽에 깎아지른 절벽과 같은 누대가 있는데, 아래로는 강수(江水:長江)가 흐르고 있다.

제영(題詠) 편에는.

安淑生詩 扶蘇山河大江河…

안숙생(安淑生)의 시에, 부소산 아래의 대강하(大江河:長江)… 그렇듯이, 이존오(李存吾)의 석탄(石灘)에서 노래했던 그곳.

  扁舟南轉尤裊窕 쪽배 저어 남으로 돌면 더욱 그윽해

  石欄桂柱臨澄淵 돌난간 계수나무 기둥이 맑은 소를 굽어본다.

네이버지식in에서는, 계수나무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계수나무는 한약재나 향신료로 쓰이며 중국남부에서 자란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계수나무란 이름으로 만나는 나무는 계피나무와 월계수는

물론 달나라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의 나무이다.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에

수입하여 심기 시작한 일본의 나무로서 그들 말로 '가쯔라'가 대부분이다.

(율곤 이중재)

중국 대륙 여행하다가 찍은 사진등 한민족 대륙역사 찾기에 도움이 되는 자료는

검증하여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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