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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③
 

①④
 

①⑤
 

①⑥
 

①⑦
 

①⑧
 

①⑨
 

②㉧
 

②①
 

②②
 

②③
 

②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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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분석

①③
한恨아리랑

①④
한민족기원

①⑤
신神
○금禁

①⑥
동방○에덴

①⑦
한글○한문

①⑧
만~리장성

①⑨
단군
○조선

②㉧
후한○남원

②①
중국○동국

②②
안변○쌍송

②③
북경○함흥

②④
국경○적병

②⑤
아阿○아亞

②⑥
철령○조선

②⑦
서해○청해

②⑧
백이○숙제

②⑨
공자○동국

③㉧
압록○황하

③①
한韓○한漢

③②
고대○삼한

③③
삼국고지도

③④
나주계수관

③⑤
지명○지도

③⑥
한역사자료

③⑦
대륙조선개국


대명조선

 

 

 

 

 

 

 

 

 

 


경도 한성

1.경도 한성 도성

①도성의 둘레가 9,975보
북쪽 백악사로부터 남쪽 목멱사에 이르는 지름이 6,063보 동쪽 흥인문으로부터 서쪽
돈의문에 이른 지름이 4,386보

②정동을 흥인문. 정서를 돈의문. 정북을 숙청문. 동북을 홍화문【동소문】동남을 광희문【수구문】. 서남을 숭례문.  소북을 소덕문【 서소문 】. 서북을 창의문

③【태조 5년 병자 봄에 각도의 민정 118,076명을 모아 도성을 쌓기 시작하였는데 정월 15일에 역사를 시작하여 2월 그믐날에 역사를 파하니 번와및 석회군이 1,759명이었다.

가을에 이르러 또 민정 79,431명을 모아서 8월 13일에 역사를 시작하여 9월 그믐날에 역사를 파하였으며 금상 4년 임인에 태종의 명으로 성을 수축하여 토성을 모두 돌로 바꾸었는데 8도 군사 총322,400명을 모아 정월 15일에 역사를 시작하여 2월에 마치었다. 성 동쪽에 처음에 수문 3을 열었는데 장마를 만나면 막히는 것을 없애기 위하여 2문을 더 만들었다 】(지리지/경도 한성부)

都城周回九千九百七十五步。北自白嶽祠南至木覓祠。徑六千六十三步。東自興仁西至敦義門。徑四千三百八十六步。正東曰興仁門。正西曰敦義門。正北曰肅淸門。東北曰弘化門【卽東小門】。東南曰光熙門【卽水口門】。西南曰崇禮門。小北曰昭德門【卽西小門】西北曰彰義門 。【我太祖五年丙子春。徵各道民丁一萬八千七十六。始築都城。以正月十五日起役。至二月晦日罷役。燔瓦及石灰軍。又一千七百五十九。 至秋。又徵民丁七萬九千四百三十一。以八月十三日始役。至九月晦日罷役。今上四年壬寅。太宗命修築之。其土城。皆易以石。徵八道軍摠三十二萬二千四百名。以正月十五日始役。二月而畢。城東初開水門三。每遇霖潦。或致壅遇。故增作二門】

1.경도 한성 도성 설명

①도성 둘레 9,975보. 북남 지름 6,063보. 동서 지름 4,386보

㉠북남 지름 6,063보≒6 ㉡동서 지름 4,386보≒4.3 ㉢북동 최소길이 3.7 ㉣ 둘레최단거리 3.7×4=14.8 ㉤도성둘레 9,975

㉥둘레최단거리 다이아몬드 3.7×4=14.8  〉도성둘레 9,975

둘레 최단거리인 다이아몬드형태 보다도 작은 도성 둘레라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②성 둘레를 기준으로 왕궁 경복궁이 너무 골짜기에 서북 쪽으로 치우쳐 있고 북악산 인왕산의 산과 산의 골 사이에 위치하여 골 바람이 심하여 풍수 지리적으로 안정적인 지형에 위치 하여야할 왕궁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③8도의 군사 총 322,400명을 모아 1월15일~2월에 마치었다. 군사가 총 322,400명 동원 ? 토성을 모두 돌로 40여일 만에 마쳤다? 군사가 322,400동원 되었다는 것은 한반도 지형에서는 있을 수 없는 군사숫자입니다.

2.경성 10문. 동대문은 옹성

(세조실록3권 세조2년3월28일 정유3번째기사 1456년 명 경태 7년

 

경성의 10문은 동대문외에는 모두 옹성이 없으니, 모름지기 풍년을 기다렸다가 아울러 축조하게 하소서. 혹자는 이르기를, ‘저 도적으로 하여금 내지에 이르게 하면, 나라는 나라가 아닐텐데 어찌 축성에 힘쓰겠는가? 더구나 승평 백년에 어찌 도적이 있겠는가?’ 하겠습니다마는, 그러나 신이 생각하건대, ‘우리 동방은 성곽의 나라입니다. 수초를 따라 행국 할 수는 없으니, 그 성곽을 갖추는 일은 완만하게 할 수 없습니다.

고려현종거란에게, 고종·원종몽고에게, 공민왕은 홍적에게 모두 성의 나쁨으로 인하여 무궁한 치욕을 당하였습니다. 공민왕고종·원종의 시대는 그만두더라도 현종때에는 어찌 당당하지 못해서 이런 환난이 있었으며, 더구나 전일에 중국에서도 또한 변란이 있었겠습니까?

혹은 이르기를, 만일 ‘주·진에 성이 있어도 족히 적을 무휼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몽인에게 중국이 어찌 장성이 없어서이겠습니까? 만일 말하기를, ‘강역이 서로 이웃하지 않으면 세력이 서로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면, 달달에게 연경이 어찌 수천 리만 되겠습니까?

다만 적인의 침공이 없을 뿐이니, 다만 우리의 방비가 있음을 믿을 뿐입니다. 어찌 수천 리의 대국으로서 그 만의 하나라도 무사함을 요행으로 여기겠으며, 또 어찌 백년토록 무사할 것을 알겠습니까? 이것은 신이 깊이 생각하고 지나치게 염려하여 권권하여 마지 않는 바입니다. 상이 받아 들임

京城十門, 東大門外, 皆無擁城, 須待豐年幷築之。 或者以爲, "使彼賊至於內地, 則國不國矣, 何用城爲? 況昇平百年, 有何盜賊?" 然臣以爲吾東方, 城郭之國也。 旣不能逐水草爲行國, 則其城郭之備, 不可緩也。

前朝顯宗之於契丹, •元之於蒙古, 恭愍之於賊, 皆因城惡以貽無窮之恥。 恭愍•高•元之時則已矣, 顯宗之時, 豈不堂堂而有此患乎, 況前日中國亦有變乎?

儻曰, "州鎭有城, 賊不足恤", 則蒙人之於中國, 豈無長城乎? 儻曰, "疆域不與之隣, 勢不相及", 則達達之於京, 豈但數千里乎?

但無敵人之侵耳, 但恃吾之有備耳。 豈有以數千里之大國, 而僥倖其無事於萬一哉, 又安知百年無事乎? 此臣所以深思過慮, 拳拳不已者也。上嘉納。

경성 10문. 동대문은 옹성-설명

①경성10문인데 교정세종지리지는 8대문 2대문이 차이가 남

②동대문은 옹성(옹기 모양 2중성)이고 나머지 대문도 모두 옹성으로 축조 건의를 상이 받아 들여서 모두 옹성이어야 하나 옹성 하나도 없음

교정세종실록지리지 8대문이고 조선왕조실록 도성 10문으로 2문이 차이가 나는 것은 원본세종실록지리지를 교정한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이런 경우는 굉장히 많습니다

3.한성은 북한산군

ⓛ본래 고구려의 남평양성이니 일명 북한산군이다.

백제 근초고왕이 동진 간문제 함안 2년 임신에 남한산【지금 광주】으로부터 와서 도읍을 정하여 105년을 지내고 .문주왕이 고구려의 난을 피하여 웅진으로 옮겨 도읍하였고(지리지/경도 한성부)

①本高句麗南平壤城。

一名北漢山郡。百濟近肖古王。以東晋簡文帝咸安二年壬申。自南漢山來都【南漢山。 卽今廣州】。歷一百五年。文周王避高句麗之難。移都態津。本高句麗南平壤城。一名北漢山郡。

②삼각산【도성 밖 정북, 일명은 화산. 신라때에는 부아악이라 일컬었다 】(지리지/경도 한성부)

三角山【在都城外正北。一名華山。 新羅時。稱負兒嶽

③【《삼국사》에 이르기를, “주몽의 두 아들, 큰 아들 비류와 둘째 아들 온조가 북부여로부터 10인의 신하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가는데, 백성들이 많이 좇았다.

드디어 한산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땅을 바라보매, 비류가 해빈에 살기를 원하니, 열 신하가 간하기를, ‘오직 이 한남의 땅이 북쪽으로 한수를 띠고, 동쪽으로 높은 산악을 의지하고, 남쪽으로 기름진 못(늪)이 열리고, 서쪽으로 대해에 막혀서, 천험의 지리로 얻기 어려운 형세이니, 이곳에 도읍하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하였으나, 비류가 듣지 아니하고, 그 백성을 갈라 가지고 미추홀로 돌아가고, 온조는 열 신하를 거느리고 위례성에 도읍하였다.

오랜 만에 비류가,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히 살지 못하고 돌아와서, 위례성의 도읍이 안정되고 인민들이 안락한 것을 보고, 마침내 부끄러워서 죽으니, 그 신하와 백성이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하였다】(지리지/경기도/부평도호부/인천군)

③【三國史云。朱蒙二子長沸流。次溫祚。自北扶餘率十臣南行。百姓多從之。

遂登漢山負兒岳。望可居之地。沸流欲居海濱。十臣諫曰。唯此漢南之地。北帶漢水。東據高嶽。南望沃澤。西阻大海。天險地利。難得之勢。作都於此。不亦宜乎。沸流不聽。分其民。歸彌趨忽。溫祚率十臣都慰禮成。

久之。沸流以彌趨忽土濕水鹹。不得安居。歸見慰禮都邑晁定。人民帖安。遂慙愧而死。其臣民。皆歸於慰禮都】。

④백제 시조 온조왕이 한 성제 홍가 3년 계묘에 국도를 위례성에 세웠다가, 13년 을묘에 이르러 임금이 여러 신하에게 이르기를, “내가 보매, 한수 남쪽의 땅이 기름지고 걸으니, 마땅히 여기에 도읍을 세워서 장구한 계교를 도모하고자 하노라.”하고, 드디어 한산 아래에 나아가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호를 옮기며, 궁궐을 짓고, 14년 병진 정월에 도읍을 옮기고 남한성이라 하다가, 376년을 지나 근초고왕 24년 신미에 도읍을 남평양에 옮기고 북한성이라 하였다. (지리지/경기도/광주목)

④百濟始祖溫祚王。漢成帝鳴嘉三年癸卯建國都于慰禮城。至十三年乙卯。王謂群臣曰。予觀漢水之南。土壤膏腴。宜都於此。以圖久安之計。遂就漢山下立柵。移慰禮城民戶。立宮闕。十四年丙辰正月。遷都。號南漢城。歷三百七十六年。至近肖古王二十四年辛未。移都南平壤。號北漢城 【卽東晋簡文帝咸安元年】。

⑤본래 고구려의 남평양성인데【또는 북한산이라 한다 】백제 근초고왕이 취하여, 그 25년 신미에 남한산으로부터 도읍을 옮기어 105년을 지나, 개로왕 20년 을묘에 고구려 장수왕이 와서 한성을 에워싸니, 개로왕이 달아나다가 고구려 군사에게 살해되매, 이 해에 그 아들 문주왕이 도읍을 웅진으로 옮기었다.

그 뒤 79년, 신라 진흥왕 13년 계유에 〈신라가〉 백제의 동북쪽 변방을 취하고, 15년 을해에 왕이 북한산성에 이르러 국경을 정하였며, 17년 정축에 북한산주를 두었고, 경덕왕 14년 병신에 한양군으로 고쳤다.

고려가 양주로 고치어, 성종 14년 을미에 12주의 절도사를 두었는데, 양주 좌신책군이라 하여, 해주 우신책군 절도사와 더불어 이보를 삼았다. 현종 3년 임자에 이보와 십이절도사를 폐하여 안무사로 고치고, 9년 무오에 지양주사로 강등시켰다가, 숙종 9년 갑신에 남경유수관으로 승격시켰으며, 충렬왕 34년 무신에 한양부로 고쳤다.

본조 태조 3년 갑술에 도읍을 한양에 정하고 부치를 동촌  대동리에 옮겨, 다시 지양주사로 강등시켰다가, 4년 을해에 부로 승격시켜 부사를 두었고, 정축에 또 부치를 견주 옛터로 옮겼으며, 태종 13년 계사에 예에 의하여 도호부로 하였다. (지리지/경기도/양주도호부)

⑤本高句麗南平壤城【一云北漢山】。

百濟近肖古王取之。二十五年辛未【卽東晋簡文帝咸安元年】。自南漢山移都之。歷一百五年。至盖鹵王二十年乙卯【卽宋廢帝光徽三年】。高句麗慈悲王來圍漢城。盖鹵出走。爲麗兵所害。是歲子文周王。移都熊津。

後七十九。年新羅眞興王十三年癸酉。取百濟東北鄙。十五年乙亥。王至北漢山城。定封疆。十七年丁丑【卽陳高祖永貞元年】。置北漢山州。景德王十四年丙申。改爲漢陽郡。

高麗改爲楊州。成宗十四年乙未。置十二州節度使。號楊州左神策軍。與海州右神策軍卽節度使。爲二輔。顯宗三年壬子。廢二輔十二節度使。改爲按撫使。九年戊午。降爲知楊州事。肅宗九年甲申【卽宋徽宗崇寧三年】。陞爲南京留守官。忠烈王三十四年戊申【卽元武宗至大元年】。改爲漢陽府。

本朝太祖三年甲戊。定都于漢陽。移府治于東村大洞里。復降爲知楊州事。四年乙亥。陞爲府。置府使。丁丑。又移府治于見州右基。太宗十三年癸巳。例改爲都護府

한성은 북한산군-설명

ⓛ삼각산은 부아악負兒嶽과 한산부아악漢山負兒岳에서 악자가 嶽과 岳으로 서로 다르나 같은 산일 경우

㉮북한산군은 한산 북쪽에 있는 도읍라는 뜻이며 북한산은 산이름이 아닙니다.

㉯삼각산은 부아악負兒嶽

㉰현재 삼각산을 북한산이라고 하는데 지리지 설명을 보면 분명 삼각산은 분명 한산의 한봉우리. 한산부아악漢山負兒岳

㉱남한산 곧 광주는  한산 남쪽에 있는 도읍 곧 남한산군으로 한산이 남한산이 아닙니다.

㉮+㉯+㉰+㉱전체를 정리하면 한산이라는 산이 있고 한산의 북쪽 지역이 북한산군이고 한산의 남쪽 지역이 남한산군이며 한산 앞쪽로 한수가 흐르고 있다는 뜻임

그런데 현반도 지형에서 북한산(지리지에는 북한산이라는 이름이 없는데 현재 우리는 삼각산을 북한산이라고 함) 곧 한산 부아악(삼각산)의 남쪽에 한산의 북쪽인 북한산군 곧 한성이 존재 한다는 것은 전혀 지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지리지의 설명대로 하면 한성은 현 한반도의 북한산의 남쪽이 아닌 북쪽에 위치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설명이 지리지와 일치합니다.

※한산의 위치

백제 시조 온조왕이 한 성제 홍가 3년 계묘에 국도를 위례성에 세웠다가, 13년 을묘에 이르러 임금이 여러 신하에게 이르기를, “내가 보매, 한수 남쪽의 땅이 기름지고 걸으니, 마땅히 여기에 도읍을 세워서 장구한 계교를 도모하고자 하노라.”하고, 드디어 한산 아래에 나아가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호를 옮기며, 궁궐을 짓고, 14년 병진 정월에 도읍을 옮기고 남한성이라 하다가, 376년을 지나 근초고왕 24년 신미에 도읍을 남평양에 옮기고 북한성이라 하였다. (지리지/경기도/광주목)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한산은 한수 남쪽에 있음

그러나 현재 한반도 한산의 한봉우리 삼각산은 정반대인 한수 북쪽에 있음 곧 세종 실록지리지는 현한반도 지형을 설명한것이 아닙니다

②삼각산은 부아악負兒嶽과 한산부아악漢山負兒岳에서 악자가 嶽과 岳으로 서로 다른 산일 경우

㉮한산의 위치는 한수 남쪽에 있음

㉯한산의 북쪽은 북한산군이고 한산의 남쪽 남한산군으로  지형 일치하나 현 한반도 서울 지형에서 한강 남쪽에 한산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도성의 북쪽 외곽을 불러 싸고 있는 산은 북한산으로  한강 북쪽에 위치 하고 있습니다.

※결론

한성부에는 한산이 존재하고 그 북쪽 지역을  북한산군이라하고 그 남쪽 지역을 남한산군이라고 하는 것이지 현 한반도 처럼 북한산, 남한산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종지리지에서 설명하고 있는 한산은 현한반도 서울의 북한산이 아니며 더구나 한강 남쪽에는 한산이라는 산이 존재 하지도 않으며 동쪽으로 높은 산악을 의지 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세종지리지의 경도 한성은 현 한반도의 서울이 아닙니다.

4.강

한강도【목멱산 남쪽. 너비 200보. 예전에는 사평도 또는 사리진도라 하였다. 북쪽에 단이 있는데, 봄·가을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며, 중사. 도승 1인을 두어서 드나드는 사람을 조사한다. 나루 머리에 제천정이 있다】

漢江渡【在木覓山南。廣二百步。 古稱沙平渡。俗號沙里津渡。 北有壇。 春秋行國祭。爲中祀。 置渡丞一人。譏察出入。渡頭有濟川亭】

용산강【숭례문 밖 서남쪽 9리에 있다. 배로 실어 온 세곡을 거둬들이는 곳으로서, 군자 강감과 풍저 강창이 있다. 】

龍山江【在崇禮門外西南九里。收貯漕運之所。 有軍資江監•豊儲江倉】

서강【서소문 밖 11리에 있다. 또한 배로 실어 온 세곡을 거둬들이는 곳으로서, 광흥 강창과 풍저 강창이 있다】

西江【在西小門外十一里。亦收貯遭運之所。 有廣興江倉•豊儲江倉】

가을두【서소문 밖 12리에 있다. 오똑하고 기이하게 빼어났고, 남쪽으로 큰 강을 임하여 벽처럼 서서, 백 길이나 되는데, 나무를 휘어잡고 아래를 굽어보면 터럭끝이 오싹해진다】(지리지/경도 한성부)

加乙頭【在西小門外十二里。突兀奇秀。南臨大江。壁立百仞。攀木俯視。毛髮竪然】

설명

①한강도 너비 200보 - 현 한반도 너비가 200보-1보는 통상 0.7m로 치면 140m -한강 너비가 140m?

②숭례문(남대문)밖 서남9리에 위치한 용산강
강은 긴 물줄기를 가진 큰 하천인데 물줄기 없고 이름만 있음

③서소문(멸실) 밖 10리 서강
강은 긴 물줄기를 가진 큰 하천인데 물줄기 없고 이름만 있음

④중량천이 전혀 기록 되어 있지 않음

⑤서소문 밖 12리 가을두 12리 - 어디 인지도 모르겠음

지리지의 지명만 같고 지형 설명이 전혀 서로 다른 것은 세종지리지의 설명은 현 한반도가 아닌 다른 지역 곧 대륙 지역을 설명하고 있으며 조선은 대륙에서 개국하였습니다.  

 

지명

역사적 사실기록

결론

교정세종실록지리지

경도 한성

대륙과 일치

교정세종실록지리지는
한반도를 설명 한 것이 아니라
대륙 지리를 설명 한 것입니다

한반도

경도 한성

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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