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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


세종지리지


조선왕조실록


율곤
이중재


 


 


 


 


 


 


 


 

①③
 

①④
 

①⑤
 

①⑥
 

①⑦
 

①⑧
 

①⑨
 

②㉧
 

②①
 

②②
 

②③
 

②④
 


한민족 역사


역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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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황충


대규모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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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분석

①③
한恨아리랑

①④
한민족기원

①⑤
신神
○금禁

①⑥
동방○에덴

①⑦
한글○한문

①⑧
만~리장성

①⑨
단군
○조선

②㉧
후한○남원

②①
중국○동국

②②
안변○쌍송

②③
북경○함흥

②④
국경○적병

②⑤
아阿○아亞

②⑥
철령○조선

②⑦
서해○청해

②⑧
백이○숙제

②⑨
공자○동국

③㉧
압록○황하

③①
한韓○한漢

③②
고대○삼한

③③
삼국고지도

③④
나주계수관

③⑤
지명○지도

③⑥
한역사자료

③⑦
대륙조선개국


대명조선

 

 

 

 

 

 

 

 

 

 

③②
고대 삼한
  
마한馬韓변한卞韓진한辰韓

1.마한馬韓

◎익산군
(지리지/전라도/전주부)

본래 마한국이었는데(후조선 왕 기준이 위만의 난리를 피하여 해로 해서 남쪽으로 내려와 한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 하였다) 백제 시조 온조에 이르러 이를 병합하였다. 이 뒤로 금마저라고 부르다가 신라가 금마군으로 고쳤다. 고려 충혜왕 후 5년 갑신에 원 순제의 황후 기씨의 외향이라 하여 익주로 승격하였다. 본조 태종 13년 계사에 예에 의하여 익산군으로 고쳤다. 옛 부곡 1 ①흑석

○미륵산 석성(전하기를 “기준이 처음으로 쌓았으므로 기준성이라”고 한다. 둘레는 686보가 넘으며 안에 샘이 14가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아니하며 군창)○후조선 무강왕과 왕비의 쌍릉(군의 서북쪽 5리, 민간에서 부르기를, “무강왕은 말통 대왕이라.” 한다)

◎益山郡
(地理志/全羅道/全州府)

本馬韓國(後朝鮮王。箕準。避。衛滿之亂。浮海而南。至。韓地。開國。號馬韓】。百濟始祖溫祚幷之。自後號金馬渚。新羅改金馬郡。高麗忠惠王後五年甲申。以元順帝皇后奇氏之外鄕。陞爲。益州。本朝太宗十三年癸巳。例改益山郡。 古部曲一。黑石。

○彌勒山石城(諺傳。箕準。始築。謂之箕準城。周回六百八十六步有奇。內有泉十四。冬夏不渴。有軍倉)

○後朝鮮武康王及妃。雙陵(在郡西北五里許。谷呼。武康王爲末通大王)

2.변한卞韓

평양부
본래 삼조선의 구도이다(지리지/평안도/평양부)

당요 무진년에 신인이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세워 군을 삼아 평양에 도읍하고 이름을 단군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전조선이요,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기자를 이 땅에 봉하였으니 이것이 후조선이며

그의 41대 손 준때에 이르러 연나라 사람 위만이 망명하여 무리 1,000여 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준의 땅을 빼앗아 왕검성(곧 평양부이다)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 조선이다.

그 손자 우거가 조명을 잘 받들지 아니하매 한나라 무제 원봉 2년에 장수를 보내어 이를 쳐서 진번·임둔·낙랑·현도의 4군으로 정하여 유주에 예속시켰다.

반고의 《전한서》에 이르기를, “현도와 낙랑은 본래 기자를 봉한 곳인데, 소제 시원 원년에 임둔·낙랑으로써 동부 도호를 설치하였다.” 하였고,

《당서》에 이르기를 “변한은 낙랑 땅에 있다” 하였다. 고구려 장수왕 15년 정미에 국내성으로부터 평양으로 이도 하였는데, 보장왕 27년 무진에 당나라 고종이 장수 이적을 보내어 왕을 사로잡아 돌아가니, 나라가 멸망되고 신라에 통합되었다.

○압록강(지리지/평안도)

의주 서쪽에 있는데, 옛 이름은 청하, 또는 용만이라고도 한다. 그 근원은 백두산으로부터 나와서 수백여 리를 흘러 함길도 갑산군을 지나고, 여연·강계·이산을 거쳐서 독로강 물과 합하여, 벽동·창성·소삭주를 지나, 주의 성 서쪽에 이르러 압록강이 되고, 암림곶을 지나 해로 들어간다.

(중사에 실리어 있다. 신이 상고하건대 《문헌통고》에 이르기를, “한이 일어나자 멀리 지키기가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 고색를 수축하였는데, 패수에 이르러 경계를 삼았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위만이 패수를 건너 조선왕 준을 격파하였다.” 하였으며,

또 상고하건대, 김부식이 말하기를 “《당서》에 이르기를 낙랑군은 산의 둘레를 따라 성바퀴를 삼았는데, 남쪽으로 패수 가에 임하였다.” 하고,

또 이르기를, “등주에서 동북쪽으로 해행하여 남쪽으로 해를 끼고 패강 어귀의 초도를 지나서 신라의 서북을 얻었다.” 하였고, 또 수 양제의 동정 조서에 말하기를, “창해를 배로 천리를 가서 패강을 가로 질러가면 평양에 이른다.” 하였으니,

이것으로 말하면, 지금의 대동강이 패수가 됨이 명백하다. 그런데, 《문헌통고》에 패수로 경계를 삼았다는 것은 압록강을 가리키어 패수라 한 듯하니, 대개 전해 듣기를 잘못한 것이다)

平壤府
本三朝鮮舊都(地理志/平安道/平壤府)

唐堯。戊辰歲。神人降于。檀木之下。國人立爲。君。都。平壤。號。檀君。是爲。前朝鮮。

武王。克。商。封。箕子于。此地。是爲。後朝鮮。

逮四十一代孫。準。時有。燕人。衛滿。亡命。聚黨千人。來奪準地。都于王險城【卽平壤府】。是爲衛滿朝鮮。

其孫。右渠。不肯奉詔。漢武帝。元封二年。遣將討之。定爲。眞蕃•臨屯•樂浪•玄菟四郡。隷于。幽州。

班固。前漢。書曰。玄菟•樂浪。本箕子所封。昭帝始元元年。以臨屯•樂浪。置。東府都護。”

唐書。云。卞韓。在。樂浪之地。高句麗。長壽王。十五年丁未【劉宋太宗元嘉四年】。自國內城移都。平壤。寶藏王。二十七年戊辰。唐高宗。遣將李勣。擒王以歸。國滅。統於新羅【摠章元年】

○鴨緣江(地理志/◎平安道)

在義州西。古名。靑河。云。龍灣。其源出自白頭山。行數百餘里。過咸吉道甲山郡。歷。閭延•江界•理山。與。禿魯江水合。經碧潼•昌城•小朔州。至于州之城西。爲。鴨緣江。過暗林串入海。

【載中祀。臣按。文獻通考云。漢興。爲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爲界。又云。衛滿。渡浿水。擊破朝鮮王準。

又按。金富軾曰。唐書云。樂浪郡也。隨山屈繞。爲郛南涯。浿水。

又云。登州。東北海行。南傍海堧。過浿江口。椒島。得新羅西北。又隋煬帝東征。詔曰。滄海航。千里橫絶。浿江。逞造。平壤。

以此言之。今大同江爲。浿水明矣。則通考。以浿水爲。界, 似指。鴨緣江爲。浿水, 蓋傳聞之誤。】

3.진한辰韓

경주부(지리지/경상도/경주부)

본부의 토성이 6이니, 이·최·정·손·배·설이다

김부식이 이르기를 “조선 유민이 산골짜기에 나누어 살아서 여섯 마을이 되었으니 
①첫째는 알천 양산촌 ②둘째는 돌산 고허촌
③세째는 취산 우진촌 ④네째는 무산 대수촌
⑤다섯째는 금산 가리촌 ⑥여섯째는 명활산 고야촌으로서,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육부 사람이 혁거세를 높여서 군으로 세웠으니 이가 신라 시조가 되었다.

세째 임금 유리왕 8년에 이르러 육부의 이름을 고치고 인해 성을 주었으니

①양산은 양부. 성은 이 ②고허는 사량부. 성은 최
③우진은 본피부. 성은 정 ④대수는 점량부. 성은 손
⑤가리는 한지부. 성은 배 ⑥명활은 비습부. 성은 설

삼가 선원을 상고하건대, 본디 나온 곳은 바로 경주 이씨이다.

慶州府(地理志/慶尙道/慶州府)

本府。土姓六。李•崔•鄭•孫•裵•薛

金富軾曰。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爲六村。
①一曰  閼川  楊山村
②二曰 突山 高墟村
③三曰 觜山 于珍村
④四曰 茂山 大樹村
⑤五曰 金山 加利村
⑥六曰 明活山高耶村。
是爲辰韓六部。 

六部人。尊立。赫居世。爲君。是爲新羅始祖。

至第三儒理王八年。改六部之名。仍賜姓。

①楊山。爲梁部。姓李。
②高墟。爲沙梁部。姓崔。
③于珍。爲本被部。姓鄭。
④大樹。爲漸梁部。姓孫。
⑤加利。爲漢祗部。姓裵。
⑥明活。爲比習部。姓薛 謹按璿源所自, 卽慶州李氏。

4.어제시

참찬문하부사 안익·동지중추원사 김희선·예문춘추관 학사 권근이 황제의 칙위 조서와 선유 성지와 어제시와 예부의 자문 2통을 받들고 경사에서 돌아왔다. 그 칙위에 말하였다
(태조실록 11권, 태조 6년 3월 8일 신유 1번째기사 1397년 명 홍무 30년)

어제시왈 ---------------

진한:"삼한 옛적에 솥발처럼 분립하여, 천리가 병쟁에 피곤하였었소. 이기기도 지기도 힘이 서로 비등하여, 통합하기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왕공이 처음 의거 높이 드시니, 김씨도 멀리 정성으로 귀화하여, 그로부터 오늘까지 나의 백성 생업을 이루었습니다."

마한:"넓고 넓은 마한 땅이, 구구하게 고래 노는 해빈에 있었소.세 방면을 처음에 분할하더니, 통일하려고 끝내는 화친하였소.무기 날카롭던 천년 뒤에는, 뽕과 삼 네 들에 봄이 왔오.

하물며 지금은 성명한 시대 만나, 먼 백성 같은 인정입었습니다."

변한:"동쪽 나라 셋으로 나뉘었을 때, 민생이 오래 편치 못했습니다.

분분한 만촉의 싸움, 시끄럽고 어지러운·진한이라 하였습니다.

옛 진터에 슬픈 바람이 일고, 거친 누대에는 흰 달이 차갑습니다. 통일을 이룬 뒤부터, 피차가 없어져 길이 기쁨을 나누옵니다."

○辛酉/

參贊門下府事安翊同知中樞院事金希善藝文春秋館學士權近齎擎皇帝勑慰詔書及宣諭聖旨•御製詩•禮部咨文二道, 回自京師。 其勑慰曰

御製詩曰:

---------------

辰韓:

三韓曾鼎峙, 千里困兵爭。

勝負力相敵, 兼幷功未成。

王公初擧義, 金氏遠輸誠。

自此至今日, 吾民得遂生。

馬韓:

渺渺馬韓地, 區區鯨海濱。

三方初割據, 一統竟和親。

鋒鏑千年後, 桑麻四野春。

況今逢聖代, 遠俗被同仁!

弁韓:

東國三分際, 民生久未安。

紛紛蠻觸戰, 擾擾•辰韓

古壘悲風起, 荒臺澹月寒。

自從成統合, 彼此永交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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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설명

연나라 사람 위만이 망명하여 무리 1,000여 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준의 땅을 빼앗아 왕검성(곧 평양부이다)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 조선이다.

위만은 한반도로 망명하지 않습니다. 왜 한반도는 너무도 작기 때문입니다. 대륙을 장악하려고 연나라와 전쟁한 사람이 대륙 일개 성의 군현 만도 못한 한반도 평양을 지배하려 망명 한다는 말입니까? 위만은 한반도 평양을 처들어 간 것이 아니라 대륙의 평양을 처들어 간것입니다.

②㉡어제시를 보면 분명히 분분한 만촉의 싸움이 시끄럽고 어지러운 ·진한이라 하여 변한과 진한이 만과 촉에 위치하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과 촉 지역은 대륙에 있는 지역입니다.

 

지명

역사적 사실기록

결론

교정세종실록지리지

마한*변한*진한

만촉 대륙 일치

교정세종실록지리지는
한반도를 설명 한 것이 아니라
대륙 지리를 설명 한 것입니다

한반도

마한*변한*진한

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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