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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


세종지리지


조선왕조실록


율곤
이중재


 


 


 


 


 


 


 


 

①③
 

①④
 

①⑤
 

①⑥
 

①⑦
 

①⑧
 

①⑨
 

②㉧
 

②①
 

②②
 

②③
 

②④
 


한민족 역사


역사란


역사의문점


역사왜곡법


성도왕건묘


대규모황충


대규모지진


제주도
말馬


울릉도독도


경도한성


영산백두산


별자리삼국


유전자분석

①③
한恨아리랑

①④
한민족기원

①⑤
신神
○금禁

①⑥
동방○에덴

①⑦
한글○한문

①⑧
만~리장성

①⑨
단군
○조선

②㉧
후한○남원

②①
중국○동국

②②
안변○쌍송

②③
북경○함흥

②④
국경○적병

②⑤
아阿○아亞

②⑥
철령○조선

②⑦
서해○청해

②⑧
백이○숙제

②⑨
공자○동국

③㉧
압록○황하

③①
한韓○한漢

③②
고대○삼한

③③
삼국고지도

③④
나주계수관

③⑤
지명○지도

③⑥
한역사자료

③⑦
대륙조선개국


대명조선

 

 

 

 

 

 

 

 

 

 

①④
한민족 기원

1.태초-창세신화

①하늘과 땅이 형성되기 전에 우주는 허황되고 아득하여 하나의 덩어리의 걷잡을 수 없는 무형의 혼돈이었는데, 혼돈에서 허공이 생겨났고 허공에서 상하사방의 광대한 공간인 우와 영원한 시간인 주가 생겨났다. 우주로부터 만물의 근원인 기가 생겼으며 가벼운 기는 올라가 하늘이 되었고 무거운 기는 내려와 땅이 되었다. 하늘과 땅 사이의 기는 서로서로 뭉쳤다 흩어졌다하며 음양을 만들고, 음양의 기는 시간의 흐름인 춘하추동의 사계절과 활동하는 공간인 중앙, 동, 서, 남, 북 오행을 형성하여, 서로서로 뭉쳤다 흩어졌다 끝없이 변화하면서 만물을 만들었다(회남자淮湳者)

②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여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神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성경 - 창세기)

③하늘과 땅이 갈라지기전 우주는 어두운 혼돈으로 마치 큰 달걀과 같았다(중국 반고)

현재 지구상의 모든 민족의 신화를 공부해 보면 모든 민족은 모두 한, 하나, 일一에서 출발 하였다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2.태초후-인류의 조상

①아담과 이브(성경)

②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한다. 처음 아만과 만난곳을 아이사타라 한다
(人類之祖曰那般 初與阿曼相遇之處曰阿耳斯陀(삼성기-하편)

③각민족 마다 이름이 다 다르게 나오나 하나에서 갈라서 나온 둘2입니다.

남과여, 양과음, 선과악 - - - - - -

인류의 조상은 하나(한)입니다 

하나(한)민족에서 출발하여 전 세계 지역으로 분화 되어 각 지역의 민족을 이룹니다.

3.첫번째 나오는 역사적 기록-환국(추정)

환국桓國(나오는 기록:삼국유사三國遺事, 삼성기三聖紀, 환단고기桓檀(桓壇)古記등)

7대 환인桓因(桓因=桓仁=檀仁=壇仁)
①대:안파견환인安巴堅桓因
②대:혁서환인赫胥桓因

③대:고시리환인古是利
桓因
④대:주우양환인朱于襄
桓因
⑤대:석제임환인釋提壬
桓因
⑥대:구을리환인邱乙利
桓因
⑦대:지위리환인智爲利
桓因
(정확한 연대 재위기간 미상)

12연방聯邦
①비리국卑離國
②양운국養雲國
③구막한국寇莫汗國
④구다천국句茶川國
⑤일군국一群國
⑥우루국虞婁國
⑦객현한국客賢汗國
⑧구모액국句牟額國
⑨매구여국賣句餘國
⑩사납아국斯納阿國
⑪선비국鮮裨國
⑫수밀이국須密爾國

4.환국 12연방 붕괴후

교정세종실록지리지-환국 붕괴후 -환인桓因→단웅천왕檀雄天王→단군조선檀君朝鮮(전조선前朝鮮)→기자조선箕子朝鮮(후조선後朝鮮)→위만조선衛滿朝鮮→한사군漢四君(진번眞蕃•임둔臨屯•낙랑樂浪•현도玄菟)→이후 조선 유민 대륙 곳 곳으로 이주 분열 통합 →

중국-㉠환국 붕괴후 황제계열-삼황(①천황天皇②지황地皇③ 인황人皇 / ①태호복희②염제신농③황제헌원) → 오제(①소호 금천②염제 신농③제곡 고신④제요 도당(당요)⑤제순 유우(순임금)→대륙 곳 곳으로 이주 분열 통합→

그외 민족-㉡환국 붕괴후 수많은 계열 분화 각민족을 형성함→대륙 곳 곳으로 이주 분열통합

환국 붕괴후 수없이 분화되고 통합되어 계보를 작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우리가 현재 배우는 역사서의 모든 계보는 그 민족에 맞게 다 짜 맞추어진 것입니다.

5.교정 세종 실록지리지 조선 마한 진한 변한 고구려 백제 신라 기원

《단군고기》에 이르기를 “상제 환인이 서자가 있으니, 이름이 웅인데, 세상에 내려가서 사람이 되고자 하여 천부인 3개를 받아 가지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강림하였으니, 이가 곧 단웅천왕이 되었다.

손녀로 하여금 약을 마시고 인신이 되게 하여, 단수의 신과 더불어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단군이다.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조선, 시라, 고례, 남·북 옥저, 동·북 부여, 예와 맥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단군이 비서갑 하백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부루이다. 이를 곧 동부여 왕이라고 이른다.

단군이 당요와 더불어 같은 날에 임금이 되고, 우가 도산의 모임을 당하여, 태자 부루를 보내어 조회하게 하였다.

나라를 누린 지 1,038년 만인 은나라 무정 8년 을미에 아사달에 들어가 신이 되니, 지금의 문화현 구월산이다.

①고구려

《동부여》

단군이 비서갑 하백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부루이다. 이를 곧 동부여 왕이라고 이른다.

단군이 당요와 더불어 같은 날에 임금이 되고, 우가 도산의 모임을 당하여, 태자 부루를 보내어 조회하게 하였다.

나라를 누린 지 1천 38년 만인 은나라 무정 8년 을미에 아사달에 들어가 신이 되니, 지금의 문화현 구월산이다.

《가섭원》
부루가 아들이 없어서 금색 와형아를 얻어 기르니, 이름을 금와라 하고, 세워서 태자를 삼았다. 그 정승 아란불이 아뢰기를, “일전에 하느님이 나에게 강림하여 말하기를,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여기에다 나라를 세우도록 할 것이니 너는 다른 곳으로 피하라. 동해가에 땅이 있는데, 이름은 가섭원이며, 토질이 오곡에 적당하여 도읍할 만하다. ’고 하였습니다. ” 하고, 이에 왕을 권하여 옮겨 도읍하였다.

《해모수》
천제가 태자를 보내어 부여 고도에 내리어 놀게 하니, 이름이 해모수이다. 〈해모수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오룡거를 타고, 종자 1백여 인은 모두 백곡을 탔는데, 채색 구름이 그 위에 뜨고, 음악소리가 구름 가운데에서 울렸다. 웅심산에서 머물러 10여 일을 지내고 비로소 내려왔다. 머리에는 오우의 관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을 찼는데, 아침이면 일을 보고,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가니, 세상에서 이르기를, ‘천왕랑’이라 하였다.

《유화》
성 북쪽 청하의 하백이 세 딸이 있으니, 큰딸이 유화, 둘째딸이 훤화, 막내딸이 위화인데, 자태가 곱고 아름다왔다. 세 딸이 웅심연 위에 가서 노는데,【청하는 곧 지금의 압록강이다. 】 왕이 좌우에게 이르기를, “저 여자를 얻어서 비를 삼으면, 가히 자손을 두리라. ” 하니, 그 딸들이 왕을 보자 곧 물로 들어갔다. 좌우가 말하기를, “대왕은 어찌하여 궁전을 지어, 저 여자를 맞아 방에 들이고 문을 꼭 닫지 아니합니까. ” 하니, 왕이 옳게 여기어 말채찍으로 땅을 그으니, 동실이 잠깐 사이에 이루어졌다. 방 가운데에 세 자리를 베풀고 잔과 술을 두었더니, 그 여자들이 서로 권하여 크게 취하였다. 왕이 나아가 붙드니, 그 여자들이 놀라서 달아났는데, 유화가 왕에게 잡히었다. 하백이 크게 노하여 사신을 보내어 고하기를,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내 딸을 붙잡아 두느냐. ”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인데, 이제 하백과 결혼하고자 하노라. ” 하매, 하백이 또 사신을 보내어 고하기를, “네가 만일 구혼하려거든 마땅히 매파를 보낼 것이지, 이제 덮어놓고 내 딸을 붙잡아 두니, 어찌 그리 예를 모르느냐. ” 하였다. 왕이 부끄러워서 장차 하백을 가 보려고 하나 〈하백의〉 방에 들어갈 수가 없고, 또 그 딸을 놓아주려고 하나, 그 딸이 이미 왕과 더불어 정을 통하였는지라, 떠나려 들지 아니하고 왕을 권하기를, “만일 용거가 있으면 하백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 하니, 왕이 하늘을 가리키며 고하매, 조금 있더니 오룡거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왕이 그 여자와 함께 수레를 타니, 풍운이 갑자기 일어, 대번에 그 궁에 이르렀다. 하백이 예를 갖추어 맞이하여 좌정하고 이르기를, “혼인의 예는 천하의 통규이거늘, 어찌 이렇듯 실례하여 나의 문종을 욕되게 하느뇨. 왕이 천제의 아들이면 어떠한 신이함이 있느뇨. ”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오직 시험해 보면 알 것이오. ” 하매, 이에 하백이 뜰앞의 물에서 잉어로 화하여 물결을 따라 노는지라, 왕이 물개로 화하여 잡으려 하니, 하백이 또 사슴으로 화하여 달아나므로, 왕이 승냥이로 화하여 쫓으매, 하백이 꿩으로 화하니, 왕이 매로 화하여 쫓았다. 하백이 그제서야 진실로 천제의 아들이라 생각하고 예로써 성혼하였다. 왕이 그 딸을 거느릴 마음이 없을까 두려워하여, 풍악을 베풀고 술을 마련하여 왕에게 권해서 크게 취하게 하고, 딸과 더불어 작은 혁여 가운데에 넣어서 용거에 실어 승천하게 하려 하였는데, 그 수레가 물에서 나오기 전에, 왕이 곧 술이 깨어 그 딸의 황금비녀를 빼어서 혁여를 찌르고, 그 구멍으로 혼자 나와서 승천하니, 하백이 노하여 그 딸에게 이르기를, “네가 내 가르침을 좇지 아니하여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였다. ” 하고, 좌우로 하여금 그 딸의 입을 얽어 잡아당기게 하니, 그 입술이 늘어나 길이가 3척이 되매, 노비 2인과 함께 우발수 가운데로 내치었다.【곧 지금의 태백산 남쪽이다. 】

고기잡이가 금와에게 고하기를, “근래 어살 가운데 있는 고기를 훔쳐 가는 것이 있는데, 어떤 짐승인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 하매, 왕이 곧 고기잡이로 하여금 그물로 끌어내게 하니, 그 그물이 찢어지므로, 다시 쇠그물을 만들어 끌어내니, 그제야 비로소 한 여자가 돌 위에 앉아서 끌려 나왔는데, 그 여자가 일술이 길어서 말을 하지 못하므로, 세 번 그 입술을 끊어내니, 그제야 비로소 말을 하였다. 왕이 천제의 아들의 비임을 알고 별실에 거처하게 하였는데, 그 여인이 창 가운데로 들어오는 햇볕을 품어서 아들을 배어, 한나라 신작 4년 계축 4월에 주몽을 낳으니, 우는 소리가 매우 크고, 골표가 영기하였다. 처음에 왼쪽 겨드랑이로부터 큰 알을 낳았는데, 5되들이만 하니, 왕이 괴상하게 여겨 말하기를, “사람이 새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 하고, 말먹이는 데에 갖다 버리게 하였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아니하고, 깊은 산에 버리니, 백수가 모두 보호하며, 구름이 낀 날에도 알 위에는 늘 일광이 있으므로, 왕이 알을 도로 갖다가 어미에게 보내어 기르게 하였다.

《주몽》
한 달 만에 그 알이 열리며 한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난 지 한 달도 지나지 못하여 말을 능히 하며, 어머니에게 이르기를, “파리들이 눈을 건드리어서 잘 수가 없으니,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십시오. ” 하므로, 그 어머니가 갈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었더니, 스스로 물레 위에 앉은 파리를 쏘아 번번이 맞히매, 민간에서 이르기를, “활 잘 쏘는 이는 주몽이다. ” 하였다. 나이가 장성하매, 재능이 겸비하였다. 금와가 아들 7인이 있는데, 늘 주몽과 함께 사냥을 다녔다. 왕자와 종자 40여 명이 겨우 사슴 한 마리를 잡는데, 주몽은 사슴 여러 마리를 잡으니, 왕자가 이를 시기하여, 주몽을 잡아 나무에 매어 놓고 사슴을 빼앗아 갔다. 주몽이 나무를 뽑고 돌아가니, 태자가 왕에게 말하기를, “주몽은 영검하고 날랜 선비입니다. 치어다보는것이 심상치 않사오니, 만일 일찍 도모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후환이 있으리이다. ” 하매, 왕이 주몽으로 하여금 말을 먹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하고자 하였다. 주몽이 한을 품고 어머니에게 이르기를, “나는 천제의 손자인데 목마가 되었으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남쪽 땅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자 하오나,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에 감히 스스로 결단하지 못합니다. ” 하니,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이것이 내가 밤낮으로 속썩이는 바이다. 내가 들이니, 선비가 먼 길을 떠나려면 모름지기 준마에 의지하라 하였으니, 내 능히 말을 가리어 주리라. ” 하고 드디어 마목에 가서 곧 긴 채찍으로 말들을 마구 후려치니, 뭇 말들이 모두 놀래어 달아나는데, 붉누런 말 한 마리가 2길이나 되는 난간을 뛰어넘어 달아나고 있었다. 주몽이 그 말이 뛰어남을 알고, 몰래 바늘을 말의 혀뿌리에 찔러 박으니, 그 말이 혀가 아파서 몹시 여위었다. 왕이 마목에 순행하여, 뭇 말이 모두 살찐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해서, 그 중의 여윈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이 그 말을 얻어 가지고, 그 바늘을 뽑고 더욱 잘 먹여서 몰래 오이·마리·협부등 3인과 결탁하여 남행해서 개사수에 이르렀는데, 건너려 하여도 배는 없고, 쫓는 군사는 급히 따라오므로,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몹시 분개하여 탄식하기를,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리를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사오니, 황천 후토께서는 저 고자로 하여금 빨리 주교를 이루게 하여 주소서. ” 하였다. 말을 마치고 나서 활로써 물을 치니, 자라떼들이 떠올라 와서 다리를 놓아 주몽이 곧 건넜다. 한참 있다 쫓는 군사가 물에 이르니 자라다리가 갑자기 없어져서, 이미 다리에 올랐던 군사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주몽이 그 어머니를 이별할 때 차마 떠나지 못하니,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한 어미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 ” 하고, 오곡의 씨앗을 싸서 주어 보냈는데, 주몽이 어찌나 생이별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던지 그 보리씨를 잊어버리고 떠났다. 주몽이 큰 나무 아래에서 쉬는데, 쌍곡이 날아와 모이니, 주몽이 말하기를, “아마도 이것은 어머니가 보내 주시는 보리씨리라. ” 하고, 활을 당기어 쏘았다. 한 화살에 모두 떨어져서, 목구멍을 열고 보리씨를 꺼내고, 물을 곡에게 뿜으니, 다시 소생되어 날아갔다.

《고구려》
왕이 졸본천에 이르러 비수 위에 집을 짓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인하여 고로써 성을 삼고, 풀더미 위에 올라앉아서 대략 군신의 자리를 정하였다.

비류왕 송양이 사냥하러 나왔다가, 왕의 얼굴이 비상함을 보고, 인도하여 함께 앉아서 말하기를, “궁벽한 바다의 모퉁이에 있어서 일찍이 그대 같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우연히 만났으니, 어찌 다행하지 아니하리오. 그대는 어떠한 사람이며, 어디에서 왔나이까. ”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과인은 천제의 손자로서 서국의 왕입니다. 감히 묻노니, 군왕은 누구의 뒤를 이었습니까. ”하매, 송양이 대답하기를, “나는 본디 선인의 자손이라, 여러 대로 왕이 되었노라. 이제 땅이 작으니, 나누어서 두 임금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대는 나라를 세운 지 며칠 안 되니, 나에게 부속함이 마땅하다. ” 하니, 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하느님의 뒤를 이었고, 지금 왕은 신의 맏자손이 아니면서 억지로 왕이라 하니, 만일 나에게 귀부하지 아니하면, 하느님이 반드시 죽일 것이오. ” 하였다. 송양이 왕으로서 늘 하느님의 자손이라 칭하였는데, 속으로 의심을 품고서 그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왕과 더불어 활쏘기를 원합니다. ”하고, 사슴을 그리어 1백 보 안에 놓고 쏘니, 그 화살이 들어가지도 아니하였는데, 사슴의 배꼽이 손을 거꾸로 놓은 것같이 되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옥가락지를 1백 보 밖에 달아 놓게 하고 쏘매, 와해되듯이 부수어지니, 송양이 크게 놀랐다. 왕이 말하기를, “국업을 새로 세웠기 때문에 고각이 위의가 없어서, 비류의 사자가 왕래할 때에, 내가 왕의 예로써 영송할 수 없으므로, 나를 가벼이 여기게 된다. ” 하니, 종신 부·분·노가 나아와 아뢰기를, “신이 대왕을 위하여 비류의 고각을 가져오겠나이다. ”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남의 나라의 장물을 네가 어찌 가져온다 하느냐. ” 하니, 대답하기를, “이는 하늘이 주는 물건이온데, 어찌 가져오지 못하오리까. 무릇 대왕이 부여에서 고생하실때, 누가 대왕께서 능히 이곳에 이를 것이라 하였겠습니까. 이제 대왕께서 만사에서 분신하시어 요좌에 양명하셨으니, 이는 천제께서 명하여 하셨음이온데, 무슨 일인들 이루어지지 아니하오리까. ” 하고, 부·분·노 3인이 비류에 가서 고각을 가지고 왔다. 비류왕이 사신을 보내어 고하매, 왕이 와서 볼까 염려하여, 고각의 색을 어둡게 하여 헌 것같이 해 놓으니, 송양이 〈와 보고〉 감히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송양이 도읍을 세운 선후로써 부속을 삼으려고 하매, 왕이 궁실을 짓기를, 썩은 재목으로 기둥을 해서 천년이나 묵은 것같이 하니, 송양이 와서 보고 마침내 감히 도읍을 세운 선후로써 다투지 못하였다. 왕이 서쪽으로 사냥가서 흰 사슴을 잡아 해원에 거꾸로 매달고 저주하기를, “하늘이 만일 비를 내려서 비류왕의 도읍을 표몰시키지 아니하면, 내가 결코 너를 놓아주지 아니하리라. 이 난경을 면하려거든 네가 능히 하늘에 호소하라. ” 하니, 그 사슴이 슬피 울매, 그 소리가 하늘에 닿아서, 장맛비가 7일 동안 내리어 송양의 도읍을 표몰시켰다. 왕이 갈대새끼를 횡류시키고 압마를 타니, 백성들이 모두 그 새끼를 잡은지라, 왕이 채찍으로 물을 그으니, 물이 곧 줄어들매, 송양이 온 나라를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검은 구름이 골령에 일어나서, 사람들이 그 산을 보지 못하는데, 오직 수천 사람의 소리만 들리며 토공을 일으키니, 왕이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위하여 성을 쌓는 것이다. ” 하였다. 7일 만에 구름과 안개가 스스로 걷히고, 성곽과 궁궐이 저절로 이루어지니, 왕이 황천께 절하고 나아가 살았다.
9월에 왕이 하늘로 올라가서 내려오지 아니하니, 그 때의 나이가 40살이었다. 태자가 〈왕이〉 남긴 옥채찍으로써
용산에 장사지냈다.

②삼한-㉠마한 ㉡진한 ㉢변한

구한九韓 중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마한

익산군은 본래
마한국
이었는데, 후조선 왕 기준이 위만의 난리를 피하여 해(육해)로 해서 서쪽으로 내려와 한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 하였다. 백제 시조 온조에 이르러 이를 병합하였다. 이 뒤로 금마저라고 부르다가 신라가 금마군으로 고쳤다. (익산군)

미륵산 석성
속설에 전하기를, “기준이 처음으로 쌓았으므로 기준성이라”고 한다. 둘레는 6백 86보가 넘으며, 안에 샘이 14가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아니하며, 군창이 있다. 후조선 무강왕과 왕비의 쌍릉 군의 서북쪽 5리쯤 있는데, 민간에서 부르기를, “무강왕은 말통 대왕이라. ” 한다. (익산군)

㉡진한

경상도는 삼한때에는
진한 땅이었고, 삼국때에는 신라 땅이었는데(경상도)

김부식이 이르기를, “조선 유민이 산골짜기에 나누어 살아서 여섯 마을이 되었으니, ①알천 양산촌②돌산 고허촌③취산 우진촌④무산 대수촌⑤금산 가리촌⑥명활산 고야촌으로서,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육부 사람이 박혁거세를 높여서 임금으로 세웠으니, 이가 신라 시조가 되었다.
세째 임금 유리왕 8년에 이르러 육부의 이름을 고치고, 인해 성을 주었으니, ①양산은 양부로, 성은 이로 하고, ②고허는 사량부, 성은 최로, ③우진은 본피부, 성은 정으로, ④대수는 점량부, 성은 손으로, ⑤가리는 한지부, 성은 배로, ⑥명활은 비습부, 성은 설로 하였다. ”고 하였다.(경주부)

㉢변한

반고의 《전한서》에 이르기를, “현토와 낙랑은 본래 기자를 봉한 곳인데, 소제 시원 원년에 임둔·낙랑으로써 동부 도호를 설치하였다. ” 하였고, 《당서》에 이르기를, “변한낙랑 땅에 있다. ” 하였다(평양부)

낙랑-《문헌통고》에 이르기를, “한나라가 일어나자 멀리 지키기가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 옛 방어진지를 수축하였는데, 패수에 이르러 경계를 삼았다. ” 하였고, 또 이르기를, “위만이 패수를 건너 조선왕 준을 격파하였다. ” 하였으며, 또 상고하건대, 김부식이 말하기를, “《당서》에 이르기를, 낙랑은 산의 둘레를 따라 성바퀴를 삼았는데, 남쪽으로 패수가에 임하였다. ” 하고, 또 이르기를, “등주에서 동북쪽으로 해행하여 남쪽으로 바닷가를 끼고 패강 어귀의 초도를 지나서 신라의 서북을 얻었다. ” 하였고, 또 수 양제의 동정 조서에 말하기를, “창해를 배로 천리를 가서 패강을 가로 질러가면 평양에 이른다. ” 하였으니, 이것으로 말하면, 지금의 대동강이 패수가 됨이 명백하다. 그런데, 《문헌통고》에 패수로 경계를 삼았다는 것은 압록강을 가리키어 패수라 한 듯하니, 대개 전해 듣기를 잘못한 것이다. (평안도)

③백제

《비류&온조》
삼국사에 이르기를, “주몽의 두 아들, 큰 아들 비류와 둘째 아들 온조가 북부여로부터 10인의 신하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가는데, 백성들이 많이 좇았다. 드디어 한산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땅을 바라보매, 비류가 해(육해)에 살기를 원하니, 열 신하가 간하기를, ‘오직 이 한남의 땅이 북쪽으로 한수를 띠고, 동쪽으로 높은 산악을 의지하고, 남쪽으로 기름진 땅이 열리고, 서쪽으로 큰 대해(큰 육해)가 막혀서, 천험의 지리로 얻기 어려운 형세이니, 이곳에 도읍하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 하였으나, 비류가 듣지 아니하고, 그 백성을 갈라 가지고 미추홀로 돌아가고, 온조는 열 신하를 거느리고
위례성에 도읍하였다. 오랜 만에 비류가,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히 살지 못하고 돌아와서, 위례성의 도읍이 안정되고 인민들이 안락한 것을 보고, 마침내 부끄러워서 죽으니, 그 신하와 백성이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 하였다.(인천군)

《위례성》
직산현은 본래
위례성이다. 백제 시조 온조왕이 도읍을 만들고 나라를 세웠는데, 고구려가 차지하여 사산현으로 고쳤고, 신라 때에도 그대로 따라 백성군의 영현을 삼았다가, 고려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직산현)

《남한성》
백제 시조 온조왕이 한나라 성제 홍가 3년(18) 계묘에 국도를
위례성에 세웠다가, 13년 을묘에 이르러 임금이 여러 신하에게 이르기를, “내가 보매, 한수 남쪽의 땅이 기름지고 걸으니, 마땅히 여기에 도읍을 세워서 장구한 계교를 도모하고자 하노라. ”하고, 드디어 한산 아래에 나아가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호를 옮기며, 궁궐을 짓고, 14년 병진 정월에 도읍을 옮기고 남한성이라 하다가, 3백 76년을 지나 근초고왕 24년 신미에  동진 간문제 함안 원년 도읍을 남평양에 옮기고 북한성이라 하였다.(광주목)
 
《북한성, 남평양성》
㉠양주 도호부는
본래 고구려의 남평양성인데, 또는 북한산이라 한다. 백제 근초고왕이 취하여, 그 25년 신미에 동진 간문제 함안 원년. 남한산으로부터 도읍을 옮기어 1백 5년을 지나, 개로왕 20년 을묘에  고구려 장수왕이 와서 한성을 에워싸니, 개로왕이 달아나다가 고구려 군사에게 살해되매, 이 해에 그 아들 문주왕이 도읍을 웅진으로 옮기었다. (양주도호부)

㉡경도 한성부는 본래 고구려의 남평양성이니, 일명 북한산군이다. 백제 근초고왕이, 동진 간문제 함안 2년(372) 임신에 남한산으로부터 와서 도읍을 정하여 남한산은 지금의 광주. 1백 5년을 지내고, 문주왕이 고구려의 난을 피하여 웅진로 옮겨 도읍하였고,(경도한성부)

《웅천, 웅진, 남부여, 백제 멸망》
공주는 본래 백제의 웅천이다. 제22대 문주왕이 한성에서 이곳으로 옮겨 도읍한 지 63년을 지나서, 26대 성왕이 또 도읍을 남부여로 옮기었는데, 당나라 고종이 소정방을 보내어 신라의 김유신과 더불어 백제를 평정하고는, 웅진 도독부를 두고 군사를 머물러 두어 진압하였는데, 당나라 군사가 물러가매, 신라 문무왕이 모두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공주목)

④신라

경상도는 삼한때에는 진한 땅이었고, 삼국때에는 신라 땅이었는데,(경상도)
김부식이 이르기를, “조선 유민이 산골짜기에 나누어 살아서 여섯 마을이 되었으니, ①알천 양산촌②돌산 고허촌③취산 우진촌④무산 대수촌⑤금산 가리촌⑥명활산 고야촌으로서,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육부 사람이 박혁거세를 높여서 임금으로 세웠으니, 이가 신라 시조가 되었다. 세째 임금 유리왕 8년에 이르러 육부의 이름을 고치고, 인해 성을 주었으니, ①양산은 양부로, 성은 이로 하고, ②고허는 사량부, 성은 최로, ③우진은 본피부, 성은 정으로, ④대수는 점량부, 성은 손으로, ⑤가리는 한지부, 성은 배로, ⑥명활은 비습부, 성은 설로 하였다. ”고 하였다.삼가 선원
을 상고하건대, 본래 나온 곳은 바로 경주 이씨이다(경주부)

하늘에서 내린 성이 3이니, ①박(朴)②석(昔)③김(金)이다

①박씨는 김부식이 이르기를, “고허 촌장 소벌공이 양록나정 곁 숲속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가서 본즉, 말은 보이지 아니하고 다만 큰 알이 있었다. 쪼개니 어린아이가 나와서 거두어 길렀더니, 10여 살에 미쳐, 용모와 재주가 뛰어나고 숙성하였다. 육부의 사람들이, 그 나온 것이 신이함으로써 함께 높여서 이를 임금으로 삼아 세우니, 이가 바로 박혁거세이다. 진인이 호를 ‘박’이라고 하는데, 당초의 큰 알이 박과 같기 때문에 ‘박’으로 성을 삼았다. ”고 하고,

②석씨는 김부식이 말하기를, “다파야국은 왜국의 동북쪽 1천 리 거리에 있었는데, 처음 그 나라 임금이 여국의 왕녀에게 장가들어, 애기를 밴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으매, 임금이 말하기를, ‘사람이 알을 낳음은 상서롭지 못하니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고 하였다. 그 여자가 차마 버리지 못하여, 비단으로 알을 싸고 보물과 아울러서 궤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보내었다. 처음에 금관국의 바닷가에 이르니, 사람들이 괴이히 여겨 취하지 아니하였다. 또 진한 아진 포구에 이르니, 곧 박혁거세 39년이다. 바닷가의 노모가 노끈으로 궤를 끌어당겨 해안에 매어놓고, 궤를 열어 보니, 어린아이가 있었다. 드디어 가져다 길렀더니, 장성함에 미쳐, 신장이 9척이요, 풍채가 빼어나고 밝으며, 지식이 남보다 뛰어났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 아이는 성씨를 알지 못하니, 처음 궤가 떠 올 때에 한 마리의 까치가 지저귀며 따랐으니 마땅히 까치 「작(鵲)」자에서 새 「조(鳥)」는 없애고 석(昔)으로 성씨를 할 것이며, 궤 속에 간직한 것을 벗고 나왔으니 탈해로 이름함이 마땅하다. ’고 하였다. 처음에는 고기잡이로 업을 삼으매, 어멈이 말하기를, ‘너는 보통 사람이 아니고, 골상이 남과 다르니, 학문에 종사하여 공명을 세움이 마땅하다. ’고 하였다. 이에 오로지 학문에 정신을 다하고, 겸하여 지리에 통하니, 남해왕이 그 어짊을 듣고, 그 딸로써 아내를 삼게 하였다. 장차 죽을 적에 그 아들 유리에게 이르기를, ‘너의 박(朴)·석(昔) 두 성은 아들과 사위를 논하지 말고, 나이가 많은 자로써 서로 왕위를 잇도록 하라. ’고 하였다. 유리가 장차 죽을 때에 미쳐 여러 신하에게 이르기를, ‘탈해는 선왕의 고명이 있고, 또 어짊이 왕위를 이음이 마땅하다. ’고 하여 탈해가 이에 임금 자리에 서니, 이가 신라 네째 임금이다. ”고 하였다.

③김씨는 김부식이 이르기를, “탈해왕 9년에, 밤에 금성 서쪽 시림 나무 사이에서 닭의 우는 소리가 있음을 듣고, 날이 밝자 대보 호공을 보내어 가서 보게 하니, 금빛의 작은 궤가 나무 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임금이 사람을 시켜 궤를 가져와서 열어 보게 하니, 어린아이가 그 안에 있는데, 용자가 기위하였다. 임금이 기뻐하여 좌우에게 이르기를, ‘이는 하늘이 내게 아들을 줌이 아닐까 보냐. ’ 하고, 거두어 길러서 이름을 김알지라고 하였는데, 장성함에 미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금궤에서 나온 까닭으로 성을 김으로 하였다. 김알지의 7세손 김미추가 신라 조분왕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조분왕이 아들이 없어서, 그의 동생 첨해왕으로써 왕위를 잇게 하였더니, 첨해왕도 또한 아들이 없으므로, 국인이 김미추를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가진 시초이다. ” 하였다.

5.결론
한국一國=환국桓國 12연방 붕괴후 모든 대륙으로 이주하면서 → 각민족 분화 → →→→한국一國 연방제로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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