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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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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무릇 3층으로 되었다. 꼭대기에 큰 못이 있으니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
북쪽으로 흘러 소하강. 남쪽으로 흘러 압록. 서쪽으로 흘러 흑룡강. 그 산에 사는 새와 짐승은 모두 흰빛이며 산허리 이상은 모두
수포석으로 되어 있다. (지리지/함길도/길주목/경원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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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頭山。山凡三層。頂有大澤。東流。爲。豆滿江。北流。爲。蘇下江。南流。爲。鴨綠。西流。爲。黑龍江。其山。禽獸。皆。白色。山腰以上。皆水泡石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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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두산 가는 출발점 경원도호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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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경원도호부 사방 경계 - 동쪽 해 20리. 서쪽 경성 두롱이현
40리.남쪽 연해 굴포 12리. 북쪽 공험진 700리.동북쪽 선춘현 700리. 서북쪽 오음회 석성기 150리。
②경원도호부 동림성-【동쪽으로 두만강을 끼고 있다. 안에 큰 우물이 있는데, 둘레가 21보나 되며,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태종 원년 신사에 그 성을 수축하여 경원부의 산성으로 삼았다】 (지리지/함길도/길주목/경원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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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慶源都護府。四境。東距海二十里。西距鏡城豆籠耳峴四十里。南距連海堀浦十二里。北距公險鎭七百里。東北距。先春峴七百餘里。西北距。吾音會石城基一百五十里(지리지/함길도/길주목/경원도호부)
②慶源都護府。東林城。【東控。豆滿江。內有大井。周回二十一步。其深莫測。太宗元年辛巳。修。其城。爲。慶源府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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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백두산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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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림성 출발→옛성터
①경원도호부 동림성에서
북쪽으로 5리쯤 가면 소다로영기가 있고 → 그 북쪽으로 30리에
회질가탄이 있으니 바로 두만강의 하류이다 →강을 건너 10리 되는 넓은 들 가운데에 큰 성이 있으니 곧 현성이다.안에 6개의 우물이 있다. →그 북쪽 90리 되는 곳의 산상에 옛 석성이 있으니 이름이 ‘어라손참’이다. →그 북쪽으로 30리에 허을손참이 있고 →그 북쪽으로 60리에 유선참이 있으며 → 그 동북쪽으로 70리에 토성기가 있으니 곧 거양성이다. 안에 돌기둥 둘이 있으니, 예전에 종을 달던 곳이다. 종의 높이가 3척,
지름이 4척이 넘었었다.
일찍이 경원 사람인 유성이란 자가 그 성에 가서 그 종을 부수어서 말 9마리에 싣고 왔는데, 겨우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었고, 따라갔던 사람 30여 명이 모두 죽었다. 그 나머지 쇠붙이는 풀숲 가운데 버려져 있었으나, 누가 감히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그 성은 본래 고려 대장 윤관이 쌓은 것이다. →거양에서 서쪽으로
60리를 가면 선춘현이니, 곧 윤관이 비를 세운 곳이다. 그 비의 4면에 글이 새겨져 있었으나, 호인이 그 글자를 깎아 버렸는데, 뒤에 사람들이 그 밑을 팠더니, ‘고려지경’이라는
4자가 있었다. 선춘현에서 수빈강을 건너면 옛 성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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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東林城。北。去五里許。有。所多老營基。其北。三十里。有。會叱家灘。乃。豆滿江之下流也。越江。十里。大野中。有。大城。卽。縣城。內有六井。其北。九十里。山上。有。古石城。名曰。於羅孫站。其北。三十里。有。虛乙孫站。其北。六十里。有。留善站。其東北。七十里。有。土城基。卽。巨陽城。內有。兩石柱。古縣。鍾。處。鍾。高三尺。圓徑。四尺有奇。嘗有。慶源人。庾誠。者至。其城。碎其。鍾。用。九馬駄來。十分之一。從者三十餘人皆死。其遺鐵?草芒中。人不敢收。城本高麗大將。尹瓘。所築。自。巨陽西距。六十里。先春峴。卽。尹瓘。立碑處。其碑四面有書。爲胡人剝去其字。後有人堀其根。有高麗之境四字。自。先春峴。越。愁濱江。有古城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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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림성 출발→백두산
①동림성에서
북쪽으로 5리쯤 가면 소다로영기가 있고 → ②소다로에서 북쪽으로 30리를 가면 어두하현이 있으며(30) →그 북쪽으로 60리에 동건리가 있고 (60+30=90) →그 북쪽으로 3리쯤의 두만강탄을 건너서 (60+30+3=93) →북쪽으로 90리를 가면 오동
사오리참이 있으며(60+30+3+90=183) →그 북쪽으로 60리에 하이두은이
있고(60+30+3+90+60=243) →그 북쪽으로 100리에 영가 사오리참이 있으며(60+30+3+90+60+100=343) →그 북쪽으로
소하강가에 공험진이 있으니, 곧 윤관이
설치한 진이다. 남쪽으로 패주·탐주와 인접하였고, 북쪽으로 견주와 접해 있다. → 영가
사오리에서 서쪽으로 60리를 가면(60+30+3+90+60+100+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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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所多老北去三十里。有。於豆下峴。 其北。六十里。有童巾里。其北。三里許越。豆滿江灘。 北去。九十里有。吾童沙吾里站。其北。六十里有。河伊豆隱。其北。一百里有。英哥沙吾里站。其北。蘇下江邊。有。公險鎭。卽。尹瓘。所置鎭。南隣。貝州•探州。北接。堅州。自。英哥沙吾里。西去六十里。有。(지리지/함길도/길주목/경원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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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산이
대개 3층으로 되었다. 꼭대기에 큰 못이 있으니,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이 되고,
북쪽으로 흘러 소하강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압록이 되고, 서쪽으로 흘러 흑룡강이 된다. 그 산에 사는 새와 짐승은 모두 흰빛이며, 산허리 이상은 모두
속돌로 되어 있다.(지리지/함길도/길주목/경원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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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頭山。山凡三層。頂有大澤。東流。爲。豆滿江。北流。爲。蘇下江。南流。爲。鴨綠。西流。爲。黑龍江。其山。禽獸。皆。白色。山腰以上。皆水泡石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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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다갈산 용龍 만나러 출발
③부의 서쪽으로 80리에 오음회현이 있고,
25리에 대령이 있으니, 이름이 ‘청산’이며, 그 서쪽으로 10리에 큰 산이
있으니, 이름이 ‘다갈산’이다. 부의 남쪽으로 35리에 굴포가 있고, 동쪽으로 5리쯤에 창기가 있는데, 속설에 전하기를, 전조에서 북벌을 할 때 조전하여 하던 곳이라 한다.
부의 남쪽 20리 해변에 순지와 웅구참리가 있고, 동쪽으로 장포가 있으며, 그 동쪽으로 50리에 큰 못이 있는데 대해와 통한다. 속설에 전하기를,
“용이 있는 곳이라” 한다. 진주와 명패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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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府西。八十里有。吾音會峴。二十五里有。大嶺。名。靑山。其西。十里有。大山。名。多曷山。距府南。三十五里。有堀浦。東五里許。有。倉基。諺傳。前朝北伐時。轉委輸處。府南。二十里。海邊。有。蓴池。雄丘站里。東有。長浦。其東。五十里。有。大澤。通。大海。諺傳。有。龍處。産。眞珠。明貝。(지리지/함길도/길주목/경원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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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설명
교정세종지리지 백두산은 한반도의 백두산이 아님
①설명과 너무도 차이나는 한반도 백두산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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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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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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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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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세종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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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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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 북이나 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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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거리로 700리이상 차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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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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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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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 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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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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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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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백두산- 산이
무릇 3층으로 되었다
한반도 백두산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음
③백두산 꼭대기에 큰 못이 있으니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
북쪽으로 흘러 소하강. 남쪽으로 흘러 압록. 서쪽으로 흘러 흑룡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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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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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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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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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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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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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세종 실록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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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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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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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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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강 (공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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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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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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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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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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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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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두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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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 압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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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 동남 두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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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 (거리 수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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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의 위치
曰哈云。黑龍•雲羅之間。卽蒙古地也(조선 왕조 효종실록 14권, 효종 6년 4월 23일 정축 2번째기사) 왈합이 말하기를 ‘흑룡강과 운라강 사이는 몽고땅이다
교정세종실록지리지 흑룡강은 몽고와 경계 지역입니다.
몽고는 한반도에서 수천~수만리 떨어져 있습니다. 교정세종실록지리지 백두산은 한반도 백두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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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발해의 멸망과 백두산 대폭발
발해(698~926)/신라(b.c.57~935)
발해의 갑작스런 멸망이 백두산 대폭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세종 실록 지리지 기록에 보면 평안도 함길도가 발해의 영역이었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고조선 고려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옆 지도에 의하면 발해는 교정세종실록지리지에 반드시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당시 백두산 대폭발로 상층부 100m 이상이 날라가고 현재 백두산 높이는 2,744m의 천지가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진동으로 얼마나 큰 지진이 한반도에 발생하며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낙진 피해가 별로 없었을 거라고 하나 백두산 쌓인 지층을 보면 그 피해가 엄청 납니다
최소한 평안도 함길도는 낙진 피해지역이 되고 한반도 전 지역은 대규모 지진 피해를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 시기로 보면 그 당시 신라가 한반도에 있었는데 신라가 백두산 대폭발로 대재앙을 입었다는 기록, 대규모 지진의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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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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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교정세종실록지리지 평안도편을 보면 평안도는 (고)조선→고구려→신라→고려→조선으로 함길도편을 보면 함길도는 고구려→고려→동여진→조선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한번도 발해의 땅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안도 함길도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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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결론
그 당시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위 지도에 있는 신라는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은 대륙에 존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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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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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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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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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세종실록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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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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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과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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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세종실록지리지는 한반도를 설명 한 것이 아니라 대륙 지리를 설명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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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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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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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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